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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Apr 27. 2020

‘미스 시네마 천국’ : 영화 1000편 도전기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시네마 천국>이란 영화를 본 적 있으신가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에서 살고 있던 ‘토토’라는 소년은 영사기사였던 알프레도와 함께, 극장에 상영되는 모든 영화를 보며 인생을 키워나갑니다. 시네마 천국이란 영화엔 특별한 영웅도, 거대한 음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평범했던 한 소년이 걸어온 길만이 존재합니다. 소년의 길에는 우정도 있었고, 생채기처럼 남은 첫사랑의 기억도 있었으며 언젠가 인생의 전부였던 수만 편의 영화도 포근히 겹쳐져 있었습니다.


무수히 수놓아진 이성과 숫자 놀음 속에서 이 작고 서정적인 이탈리아 영화는 1989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이윽고 시네마 천국이 가진 의의는 곧 제 도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를 깨닫게 된 저는 난해한 골방 예술이라 생각하기만 했던 영화를 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2번째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제1번째 인생은 각종 실패와 지워지지 않는 성공의 집착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전 과감히 현실 속 요소들을 저버리고 인생의 쓴맛과 고통에서 이겨내는 법을 위해 토토가 걸은 길을 좇기로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낭만적인 해결책이었다는 확신이 듭니다.


‘영화 1000편’. 한 편의 영화가 평균적으로 1시간 50분 정도라 할 때, 1000편이면 무려 1833시간으로 약 76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영화만 봤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 SNS 플랫폼을 활용해, 첫 1편부터 영화 카운팅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공략 영화는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불후의 걸작들이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국내부터 해외까지 유명 시상식에서 상을 탄 작품들과 BBC 선정 100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대학교 한 학기를 휴학하고 외국에 떠나 있던 시기에, 600개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보러 떠난 날에도, 외국 친구들과 캐나다의 단풍을 보러 캠핑을 간 날에도 영화는 언제나 저와 함께 였습니다. 600개의 이야기는 저에게 여행의 진한 향수를 주었고, ‘너만 헤매는 게 아니야.’라는 위로를 건네었으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기대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순수한 영화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뷰티풀 마인드>(2001)의 주인공 ‘존 내쉬’는 완벽을 추구했지만 끝내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파멸이 아닌, ‘사랑’으로 누구보다 아름답게 승화시켰습니다.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속 콩가루 집안은 “인생은 빌어먹을 미인대회의 연속이야!”라는 말을 외치며, 많은 관중들 앞에서 막내딸의 미인대회를 속 시원하게 망쳐 놓기도 합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어온 이들은 진정으로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죠. <라 비 앙 로즈>(2007)의 주인공 에디트 피아프는 불행했던 유년시절과 남편을 잃은 슬픔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Non, Je Ne Regrette Rien)”며 온몸을 불사르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끝내 신의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매듭짓게 됩니다.


제가 봤던 영화들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당신이 왜 가장 특별한지에 관해 말해줍니다. 전 영화 1000편 보기 도전을 통해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닌, 시련이 닥치더라도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서는 삶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저를 채찍질하기보다, 조금은 투박하고 모자란 나지만 그만큼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600개가 700개가 되고, 700개가 800개가 되었을 무렵에 두 번째 공략 영화로, 봤던 영화들을 또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의 여운이 남아있다면 다시 보기를 택해, 예전보다 성장한 저를 느끼고 과거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이해해보는 생각의 텀을 가져보았습니다. 어렸을 적 본 <어바웃 타임>(2013)은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중 하나였고, 두 번째로 봤을 땐 뜨거운 사랑보단 따뜻한 사랑을 할 줄 아는 남녀 주인공의 연애를 해보고 싶다 생각했고, 세 번을 보니 시간은 돌고 돌지 않으니,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란 메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명작은 나와 함께 늙어감을, 제가 클수록 함께 커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00편을 꽉 채웠을까요? 답은 아니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현재 960여 편의 영화를 본 상태로, 바빠진 일상을 뒤로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저에게 영화는 빼놓을 수 없는 친구이자, 눈에 그려지는 한 폭의 그림이자, 또 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도전은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시작하지만, 제 도전은 크나큰 목표 라기보단 영감의 원천입니다.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현존하는 실재인 세상을 위로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이렇게 전 오늘도 출발선에 다시금 서봅니다. 비록 초라한 주연일지라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가슴 펴고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영화를 보는 저의 이름은 ‘미스 시네마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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