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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Dec 12. 2020

리비에라의 프리덤 #1

프롤로그 : 3년 전 너에게

해영아 내가 요즘 사춘기가 왔어.
고민이 많다

비웃지말고 내 편지 잘 읽어봐

너 내가 뭐 좋아하는지 혹시 기억나니?
5월에 리스본에 가면 말해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글쓰고 여행하고 노래 부르고
그 사람이 나야

근데,
작품을 만들고 글을 쓰려면
영감을 받든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든지,
해야하는데 내가 요즘 많이 살만 하다

나는 솔직히 요즘 살만해
집안도 풍족해졌고 갖고 싶은 것 참지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눈을 보면 가슴이 녹아내리는 사람도 생긴 거 있지
해영이 너가 예전에 날 걱정해준 시간들이 아까울만큼
나쁜 일이 있어도 앞만 보고 훌훌 털어버리는 거 있지

근데 그게 끝이다
이해돼?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자꾸 나를 뒤돌게 하고, 헛짓거리 하게 만든다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를 봐도
가끔 딴 생각이 든다
사유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틀었는데
무사유가 모든 것을 틀어 막는다

너는 지금 어디쯤이니?
저번에 니스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었잖아
너와는 어쩌면 평생 연락이 안될 수도 있겠다
아니 그러길 바라
이런 나, 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바다 앞에서 나와 이야기하는, 사유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너는 그런 기분을 아니
자꾸만 관계가 상실되고 고립되는 기분을 아니
개성이 사라지는 기분을 아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우린 이어져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 나, 너를 느낄 수 없어
예전 너의 그 초록머리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고싶다 너가
어쩌면 다신 못볼 것을 알기에
더욱 그리운 거겠지 너가..

리스본에도, 니스에도 못가는 내가
너의 그림자를 오늘 밤에도 그려보는 건
자유롭지 못한 내가 떳떳하질 않아서 그런거겠지..

내 생의 의지는 나태함과 조급함이 뒤섞인 인생의 허점이다
다음에 우리 리스본의 망망대해에서 만나

해영아
부디 잘지내라

- 20xx. xx. xx
Y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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