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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Dec 16. 2020

리비에라의 프리덤 #5

"해영아 우리 3일 남았어."

"벌써 그렇게 됐나.."

귀찮은 듯 해영은 제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햇살에 찡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며칠 뒤면 이 뜨거운 햇빛도 마지막이란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묽어졌다. 내 발을 건드리는 바람의 촉감은 포근하다못해 푹신하다. 귀국 3일 전엔 어쩐지 아쉬움보단 어색함이 지배적이다. 리비에라의 땅에 누워서 공기를 느껴보는 일, 참신하다 못해 어색하다. 평생 당신이 묶어 두었던 자유가 펼쳐지고 뭉개지는 순간이다.


"해영아 있잖아.. 나는 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날 가만히 안두는 것 같아."

"너가 하고 싶은대로 살면 되잖아."

"그것도 하고 싶고, 자유롭게도 살고 싶어."

"그럼 자유로울 수 없어. 자유는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냐. 몸이 아플정도로 그립고, 고픈 것이어야 해."

"그건 채울 수 없는 거잖아."

"채우려고 하는 마음 자체가 집착이고 자유의 말살이야."


해영의 목소리가 흥분한 것 같아, 얼굴을 보니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해영의 손을 무턱대고 잡아버렸다. 해영아 너가 나를 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이 고통스러운 감정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 때까지 나를 바라보지 말아줘. 이 병이 고쳐질 때까지 나에게 눈길 주지 말아줘. 고개를 숙이고 찡그리니 그녀의 얼굴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 화나지 않았다. 누구보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오늘 11월 1일이 된 거 알았어?"

해영이 갑자기 날짜 이야기를 꺼낸다.


"난 11월이 싫은데.. 안좋은 날이 왔네."

나는 11월이 싫다. 11월은 신이 버린 달이다. 예전의 그 애는 미안하다는 말 그 뿐 물결처럼 흘러가버렸고,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겨울이 오기 전의 그 시간은 본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나,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준 적 없었다. 리비에라에선 11월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강에 비친 집들을 응시하였다.


"11월에 떠났다는 너의 그 애.. 누구였어?"

"정도를 모르는 사람."

"그게 무슨 뜻이야?"

"하늘보다 푸르고.. 강보다 빠르고.. 속도를 줄이줄 모르는 앞서가는 사람..이였어."

"넌 현실보다 느리고 뒤쳐져 있잖아. 둘이서 잘 맞았겠네."

해영이 웃으며 나를 놀리는 듯이 대답했다. 난 웃을 수 없었다. 해영의 말이 다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추억을 만들면서도 전의 추억에서 살고, 누군가가 떠난 뒤에야 새로운 추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은 이미 잊어버린 기억들 속에서 오래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특징이라 믿어왔다. 어찌보면 11월은 음력으로 나에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그들에겐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내게 초겨울이었을 수도 있겠다.


남자가 음식을 사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왜 이제왔어- 해영은 나와 대화하며 남자를 생각한 것 같이 보였다. 나는 해영이 11월이란 단어를 꺼낸 것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그녀는 공감하지 않았다.


"있잖아.. 우리 3일 후에 떠나."

"너도 같이 한국에 갈래?"

해영의 말에 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색함에 참지 못하고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난 너가 한국에 안갔으면 좋겠어. 나와 해영이가 비행기에 탔으면 좋겠어.


"난 안가 해영아. 여기서 조금 더 있어야 해."

"그래.."


해영은 눈을 돌려 남자의 입에 묻은 음식 부스러기를 닦아주었다. 빛이 그들을 환하게 비추었고 시간에 따라 바뀌는 그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11월은 내 영혼이 빼앗기고 찢어지는 달. 괜히 이 모든 걸 11월탓으로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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