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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 에디터 Dec 21. 2020

조문을 가지 못한 나에 대한 참회

-S에게

유괴를 당할 뻔 했던 8살에
날 구해주었던
앞 집 할머니

그녀가 3개월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에 가보긴 커녕
49일이 지나기 전까지도
그녀가 살아있는 줄 알았다

그녀는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 할머니를 보러
집에 놀러왔었다

나는 방에서
지금은 만나지도 않는
친구들에게
옷이 잘어울리냐는
질문 따위나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부칠 곳이 없다
부쳐도 그녀는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다

어떤 남자가
계단에 앉아있던 나에게
자기가 사는 곳엔 토끼가 있다고 했다
토끼가 무서웠던 나는 도저히 그 곳에 갈 수가 없었다

갈색 모자를 쓴 그 남자는 내 앞에 계속 서 있었다
그 때 나는 눈이 멀었다

깜깜했던 시야에 전화벨이 울리고
묘사하기 어려운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앞 집 할머니는 새총같은 작은 몸으로 나를 보러와서
갈색모자와 언성을 높였다

내 가족들이 왔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살려준 인생으로
맛있는 밥을 먹고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고
영화를 편한데서 수천편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걸 선물해준 시간이다
그녀는 죽어도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이다

죄송합니다
편지 첫 줄에 써있는 말이었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날 살려주었을 때 이름을 묻지 않았던 죄로
지금까지 본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치만 당신은 제 이름을 아시지요

살려주어 감사했습니다
은혜는 고통 속에서 글을 쓰는 몇 십년으로 갚아갈게요

오늘도 저는 당신 때문에 펜을 잡습니다
이만 편지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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