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사는게 참 죄스러웠다
내 옆에 있는 친구들도 꼴보기 싫었고
내가 가치있는 인간인 이유를 5분에 1개씩 찾지 못하면
자해 생각이 났다
선생님
저는 왜 이럴까요
부모도 애인도
다 싫습니다
그들에겐 더더욱 말을 할수가 없습니다
제 얘기를요
선생님은 당신도 모른다했다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외국에 가 공부를 했다
공부는 커녕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앉아있으면 삶의 지속성이 왜 무의미한지만
곱씹게 되어 식욕만 떨어뜨렸다
창문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을 때
꼴보기 싫었던 친구 중 하나인 애가
내게 장갑을 선물해주었다
흑색의 와인과 브라운 코트
우리밖에 없던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나는 장갑을 꼈다
너는 장갑이 잘어울린다 했다
장갑을 낀 나는 싫지 않았다
장갑 속에서 교복을 입고 그네를 타던 너의 모습이, 술에 취해 같이 비틀거리다 정류장에서 잠들었던 둘의 모습이 문뜩 떠올랐다
난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기교와 흉터가
동사하였다
동해에 가 그 장갑을 잃어버렸을 때
택시를 타고 다시 찾으러 가는 길에서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부디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제 생명과 가치를 부여받은 공간이 부디 사라지지 않게 해주시고
애석하게 장갑을 끼고 가난한 우리의 친구를 구원받게 해주십시오
몇 년 전
내 병을 두고 너가 장갑을 사며 빌었던, 기도가
빛을 타고 나에게 닿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