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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Nov 13. 2017

어느 날 멕시코에서

그들의 삶

 난개발로 인해 산 중턱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시내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해진 후 높은 곳에 서면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으로 보일뿐. 저들이 보이려면, 저들의 목소리가 들리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드문드문 별이 보이던 높은 곳에 앉아 꼬로나를 마시는 내가 슬퍼지는 밤이다.


 그러던 중 멕시코 인종(?)의 미국 국적 여행자를 만났다. (단일 민족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출신과 국적을 구분하는 일이 아직은 어색하다) 그의 조부는 오래전 멕시코에서 활동했던 활동가였다고 했다. 정리되지 않은 곳에서 삐져 나는 목소리가 싫었던 멕시코 정부는 갖은 탄압으로 그를 대했다고 한다. 견디지 못한 그의 조부는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고 그녀는 그렇게 멕시코계 미국인이 되었다. 영어로는 Mexican american쯤 되겠다. 또 전해 들은 얘기론 멕시코를 사랑하는 여성의 멕시코 기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멕시코의 부패와 불합리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라는 접속사가 슬프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살인 협박과 불안함에 시달린다고 한다. 


 여기선 들리지 않아야 하는 목소리를 낼 때 매우 위험해지거나 나라를 떠나야 한다. 조금의 엇박도 성가신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두 사람 모두 아직도 이야기함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랑시에르라면 '정치'라고 얘기했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밀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서 그들의 대통령, 그들의 부패,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대통령은 아마 수십 미터 거리에서 잠들어 있었을 게다. 의도치 않아도 깜깜한 곳에 있는 목소리는 삐져나온다.


 우리가 '진공'이라 얘기하는 것에는 사실 공기가 (조금) 있다. 그리고 쉼 없이 다른 공기가 들어가려 문을 두드리고 소리친다. 보도블록의 풀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들 모두는 살아남을 것이고 이 아름다운 멕시코도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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