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년 기념일에 떠오른 그림자
"오빠 3주년 축하해! 고생 많았어"
"현주도 3년 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해!"
연애 3주년을 맞이한 현주와 민우는
큰맘 먹고 청담동 소개팅 맛집이라는
"청담 캘린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토요일 오전,
아직 평일의 피로가 덜 풀린 듯했지만
압구정로데오역에서 만난 둘은
새로운 곳을 간다는 설렘에 표정만큼은 들떠 있었다.
"오빠 여긴가 봐. 대박! 너무 예뻐"
사방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현주를 뒤로 하고
민우는 예약자 이름을 대고 현주와 함께 테이블로 향했다.
"와 유튜브에서 본 것보다 더 예쁘네!
근데 김치볶음밥이 3만 원이야"
메뉴를 둘러보던 현주는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르며
민우의 눈치를 살피듯 스윽 쳐다봤다.
"에이, 이제 우리 둘 다 직장인이고
우리가 만난 지 3주년인데
인당 3만 원... 기념이다!"
태연한 듯 민우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몸에서는 낯선 장소에 떨어진 동물이 그렇듯
어색한 긴장감과 뻗뻗함이 역력했다.
"그래 오빠. 오빠 잘 컸네.
언제 이렇게 번듯한 직장인이 됐어?
둘이 누우려면 몸이 포개지는
학교 옆동네 자취방 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현주는 처음 만난 시절
대학교 4학년이던 민우를 떠올렸다.
학교 바로 앞은 월세가 비싸서 구했을
버스 2 정거장 거리의 월세방,
그 마저도 걸어 다니면 건강에도 좋다며
태연하게 20분씩 언덕을 넘어 걸어 다니던 민우였다.
처음 민우의 자취방을 봤을 때의 장면을
현주는 잊지 못한다.
책상 뒤로 빨랫대를 펼치면 방이 가득 차던 자취방,
"잠깐만" 하며 현주를 현관에 세워두고는
재빨리 빨랫대를 치우고 청소기를 돌렸는데
청소기를 다 돌리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을 크기였다.
둘은 그곳에서도 행복했다.
겨울이면 바닥에서 귤을 까먹었고
여름이면 에어컨을 틀고 쉬었다.
크지 않던 방은 삽 시간에 에어컨 냉기로 채워졌고
그 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눕고 싶을 땐 현주가 민우 품에 안기듯 돌아 누웠고
민우는 현주를 좁지만 너른 품으압구정 출신 현주 프로의 대기업 생존기 2편
3주년 기념일에 떠오른 그림자쓱로 포근하게 감쌌는데
그럴 때면 그 좁은 바닥이 아늑한 보금자리로 느껴졌다.
"그러게 말이야 현주야.
나 이제는 자취방에 침대도 있고
남향에 코너집이라 햇살도 잘 들어와!
접이식이지만 식탁도 있어서
요리도 더 본격적으로 해줄 수 있어!
현주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 볼 때가
나는 제일 행복한 걸."
민우의 소박한 다정함에
현주는 이래서 3주년까지 올 수 있었구나
생각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3만 원짜리 김치볶음밥과
3만 원짜리 트러플 리소토를 내려놓았다.
고기라면 껌뻑 죽는 둘이지만
차마 6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없었다.
"오빠, 우리 그간 3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잖아.
오빠는 학교 졸업하고, 대학원 졸업하고, 이제 회사에서 신입도 아니고.
나도 학교 졸업해서 정신 차리니까 이제 2년 차라고 하고.
우리 3년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민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눈을 밝히며 말을 꺼냈다.
"3년 뒤면 지금 월세방 계약 연장 됐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집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돈도 잘하면 1억은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학원 학자금도 다 갚았고
보증금 천만 원 엄마한테 빌린 것도 다 갚았으니까."
설레는 듯 말하는 민우를 보며
현주는 왠지 찜찜한 기분과 함께
본인의 3년 뒤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 연애 6년을 넘긴 7년차, 그리고 직장 5년차
별 일 없으면 한 번쯤 승진도 했을지 모른다.
찜찜함의 원천은 모자람이었다.
희망찬 듯한 각자의 계획 사이
약소했던 우리의 계획.
리조토가 부대꼈다.
김치볶음밥 알을 새며
애써 기념일 기분을 내보는 현주.
"그러게 잘 됐다 오빠.
근데 여기 김치 볶음밥, 괜찮긴 한데 오빠가 해준 맛 못하네.
역시 나는 오빠가 해준 게 제일 맛있나봐."
"그래? 그럼 다음주에는 집에서 볼까?
현주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 볶음밥 해줄게.
나는 현주가 맛있게 먹는 거 볼 때가 제일 행복하더라."
이 때의 둘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앞으로 함께 먹을 김치 볶음밥이 몇이나 남았는지.
둘은 집 데이트를 약속하며
별 시덥잖은 얘기로 3주년을 채워갔다.
-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