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출신 현주 프로의 대기업 생존기 4편

유부남 남자 선배가 그나마 안전한 이유

by 은조

"현주 프로님 좋은 아침. 주말 잘 보냈어요?

우리 커피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띠룽-


출근한 현주에게 채팅이 왔다.

현주의 햇살 같은 성격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있을지언정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현주는 공대에서 과 대표를 할 정도로

남초 문화가 익숙했다.




대다수의 대기업이 그렇듯

아무리 신입 중 여자가 많아졌다 하더라도


역피라미드 구조에 기반한

전반적인 회사의 분위기는

유구한 전통의 남초 분위기,

쉽게 말하면 '군대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세련되게 포장된 군대

물리적 폭력이 배재된 군대

양성 비율이 비슷해지는 군대

호칭을 수평하게 통일한 군대


어떻게 포장을 해도 군대는 군대일 뿐.


여자 신입 중 ROTC 학군단 출신이라도 있다간

선배들은 '옳게 됐다'며 안심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태도를 어찌 조율해야 할지

걱정하거나 불안해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배려'로 보이는 이것의 속내는

'변하기 싫다' '조심하기 번거롭다'는 것.

즉, '하던 대로 하고 싶다'는 관성에 가까웠다.




이런 조직의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공대 출신' 현주의 털털한 모습은

'압구정 출신'이라는 데에서 오는

괜한 거리감을 좁히기에 충분했다.


실상 소탈한 현주의 이미지는

그녀의 이미지에 '편안함'을 더했고

매일 얼굴 봐야 하는 사이에 큰 매력 요소가 되었다.


이 때문에 몇몇 여자 선배들은

뒤에서 몰래 그녀에게 냉담하게 굴거나

소외시키려는 시도도 다소 보였으나

남자 선배들은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물론 뱀눈 한 선배도 마음에 거슬릴 뿐 소수였고

다수는 알면 알수록 다정하고 사람 좋은 선배들이었다.


다만 어린 자식이 있는 여자 선배는

본인 몸도 고될 뿐 아니라

휴직 전후로 본인이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기에

먼저 후배를 챙겨줄 현실적인 여력이 없을 뿐이다.


한편 남자선배들은 어린 아기가 있어도

이러한 점에서 한 스푼 여유가 있었다.


고로 현주는 대체로 남자 선배들이 편했다.

수적으로도 다수라 맞는 사람 찾을 확률이 높았고

여유를 바탕으로 선의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제일은

결혼했지만 아이 없는 남자 선배다.


흡사 본인 자식 없는 삼촌, 이모처럼

적당히 젊었고, 적당히 가진 게 있으며,

'후배 세대와 잘 어울리는 본인의 모습' 그 자체를 뿌듯해하고,

무엇보다 '인기 있는 (젊은) 선배'로 인정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유의 논리라면

'미혼의 골드 미스/미스터 선배'가 최고 아니냐

생각할 수 있는데


큰 화를 입는 수가 있다.


우선 미혼의 선배와 잘못 어울리면

괴상한 구설수에 휘말리기 일쑤다.


어울리기는커녕, 피치 못해

회식 때 옆 자리 혹은 맞은편 자리에 앉기만 해도


'둘이 잘 어울린다'

'서로 좀 어떻게 생각하냐'


나이가 몇 차이 나건 무관한 발언들에

표정 관리에 위기가 올 수 있다.


알고 보니 선배 측에서

이성적인 감정이라도 품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최악으로,

호감의 대상이 신포도로 전략하는 건

한 순간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성 간에 소문이 돌 때

회생 불가한 수준의 평판 손해를 보는 건

십중팔구 여자 측이기 때문에

미혼 남자 선배와의 친분은 더욱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또한 남자 선배도 생각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체신을 생각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속으로 훌륭한 선배, 후배라 생각할수록

그다지 친해질 수 없는 관계가

바로 미혼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미혼 여성 선배의 대표주자,

골드미스 선배는?


가장 무서운 존재이다.


요새는 시대가 달라져

결혼이 선택이고

골드미스라는 말조차 옛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기존의 대기업 문화에서 10년 이상 골드미스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커리어적 성취까지 어느 정도 이루었다면

옛말 그대로 '골드미스'일 확률이 높다.


본인이 커리어를 위해 많은 걸 희생했다는 피해 의식,

커리어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여성으로서 즐거움을 숨 쉬듯 누려보지 못했다는 욕구불만은

언제든 건물 하나쯤 서늘하게 만들 수 있는

지독한 독기의 원천이다.


이걸 옛날에는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일반 노처녀와 차이가 있다면 히스테리를 원동력으로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것.


골드를 쟁취한 미스의 마음속 저변에서는

남자 후배는 본인에게 이성적으로 잘해주지 않아서

여자 후배는 본인처럼 모든 걸 회사에 갈아 넣지 않아서 불만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때로는 후배를 거침없이 갈구고

다음 순간 과할 정도로 챙겨주는 이 유형의 선배는

남자들 마저, 임원들 마저 기죽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다.




성격 밝은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남들 기분이 상하건 말건

본인 기분을 챙기는 "꽃밭 짓밟기 유형"


남들 기분 파악에 능하고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꽃밭 키우기 유형"


현주는 꽃밭을 키우는 유형답게

본능적으로 대기업의 다이내믹을 파악했다.


머리 굴리고 생각할 것도 없이

몸 편하고 마음 편한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곧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이었다.


도독-도도독-


무소음 키보드를 눌러 답장을 했다.


"네 좋아요. 커 굽집으로 가실까요?"


답장을 마친 현주는 다시 코트를 걸치면서

메신저를 보낸 선배와 눈짓을 교환했다.


늘 별 볼일 없는 농담 따먹는 단짝이자

원한다면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넬 줄 아는 선배들과

모닝커피를 챙긴다는 핑계로 건물 게이트를 나섰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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