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문화의 꽃,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
우리나라에 550년 동안 내려온 악곡이 있다면 믿겠는가? 지금으로부터 550년 전이면 조선시대이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같은 우리 역사의 굴곡을 모두 넘어 살아남았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이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 국보 1호는 무엇일까? 그렇다, 국보 1호는 ‘숭례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요무형문화재 1호’가 「종묘제례악」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답을 알고 있었는가? 우리나라의 법에는 무형문화재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무형의 문화적 유산”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묘제례악은 ‘딱’ 맞아떨어지는 공연예술이다.
「종묘제례악」(이하 종묘악)이 언제 만들어졌기에 550년이나 됐을까. 여기에는 한국사의 VIP, 바로 ‘세종대왕’이 관여돼 있다. 종묘악은 「보태평」과 「정대업」으로 이뤄져 있다. 「보태평」은 조선 임금의 문덕(文德)을 기리고, 「정대업」은 무덕(武德)을 기리는 모음곡이다. 이 두 모음곡은 세종이 창제한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세조 때 약간 개정하여 종묘제례에 정식으로 채택했다. 최소 1447년(세종 29)에 만들어져 1464년(세조 10)에는 종묘에서 연주됐으니, 대략 550년 동안 이어져온 문화유산이다. 물론 일부 수정하거나 추가되기도 했고, 전쟁 같은 상황에서 중지되기도 했다. 현재는 (사)종묘제례악보존회와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고 있다.
종묘악이 연주되는 ‘종묘제례’는 무엇이고, ‘종묘’는 어떤 곳일까? 여기에 550년 전승의 역사가 담겨 있다. 종묘는 잘 알고 있듯 조선의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우리나라 고택을 방문하면 가내에 사당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사당이 종묘이며, 토지신과 곡물의 신인 ‘사직(社稷)’과 함께 나라의 근본으로 인식됐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종묘사직을 위해…”라는 말은 왕실과 국가를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춘하추동’과 ‘납일(동지 뒤 세 번째 未日)’에 한 번씩, 총 다섯 번의 종묘제례를 올렸다. 여기에 연주되는 가무악(노래·춤·음악)이 「종묘제례악」이다. 그러니까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종묘제례는 국가의 큰 제사 중 하나였고, 여기에 연주되는 종묘악은 조선시대에 중요한 악곡이었다. 전승의 최우선 순위였던 셈이다.
세종은 향토적인 악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보태평」과 「정대업」을 비롯한 향악 궁중음악을 많이 창제했다. 특히 종묘제례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향악에 익숙한데, 종묘의 제사에 당악(중국 음악)을 먼저 연주하고 … 조상 어른들의 평시에 들으시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떠냐며 신하들에게 논의하라 명한다.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라는 우리의 인식과 다르게, 세종은 간단하지만 합리적인 의견으로 우리 음악을 사용할 것을 명했다. 세조 때에는 세종의 업적을 이어갈 목적으로 「보태평」과 「정대업」 등의 향악을 익히게 하니, 지금까지 종묘악이 이어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은 조선 궁중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국가 전례 가운데 첫 번째인 ‘길례(吉禮)’, 그중에서도 임금이 직접 주관한 ‘대사(大祀)’에 속하는 종묘제례의 악곡이니 그럴 만도 했다. 왕실의 위업을 찬양한 악장(樂章), 역대 임금의 문덕과 무덕을 형상화한 일무(佾舞), 조상을 위해 향악으로 창안된 음악. 각각의 구성이 철학적이고 깊은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다. 이제는 일 년에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하지만, 종묘악이 가지고 있는 위엄과 장엄미는 아직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