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읽고
현대문학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제게 실험문학 책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도전이었습니다. 다른 책을 참고하고 이전에 읽은 책을 떠올리면서 퍼즐 맞추기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다른 분들과 같이 읽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어제 이 책에 대해 북클럽을 했습니다. 온라인상으로 했는데 어찌나 집중이 잘되고 재미있었는지 기억나는 이야기를 적지 않으면 아까워서 안 되겠더라고요. 초반에 적었던 독후감에 덧붙여 모임 후기까지 적어봅니다.
Q. 생존 인물 중 누구를 가장 혐오하십니까?
A. 너무 많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습니다.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마르셀 푸르스트 질문 중에서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의 인물인데 전부 볼라뇨의 혐오의 대상들입니다. 실제 인물들을 바꿔서 표현했다고 하는데 대체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공들여서 한 땀 한 땀 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를 싫어하기만 하면 됐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푸르스트의 질문이라고 하는 것 중에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대답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이 책이 친절하지 않아서 뭐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상당히 고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북토크에서 나왔던 의견을 추가로 이야기하면 각 등장인물에 자기를 분할해서 쓴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어떤 한 사람도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순 없습니다. 볼라뇨 또한 나치와 관련해서 혹은 어떤 문제가 이슈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려던 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나치'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인명사전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어떤 인물은 이 사람이 '나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근에 읽었던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과연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악을 악이라고 확실하게 부를 수 있는 경우가 있긴 한지 우리에게 물어보는 것 같아요. 독일문학 중에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도 한나가 한 행동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떤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한스에 이입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안에 한 개인은 소외되거나 어떤 선택을 강요받게 될 수 있습니다. '현실'이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 위에 '허구' 인물을 내세워 독자들에게 이런 상황에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과연 너라면 어땠을까라고요.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의 경우에도 유사한 반응이 있었다. 평자들은 이 작품과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의 유사성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만약 보르헤스가 소설이라는 형식의 문제에 그렇게 무관심하지 않았다면, 여기서 한 발 더 내딛어 볼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볼라뇨가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서 <야만스러운 탐정들>로 나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보르헤스가 기꺼이 썼을 법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p.45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중에서
예전 나치당을 지지하고 히틀러를 찬양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현상이 지금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봐요. 아니면 제가 요즘 2차 세계대전을 계속 생각하고 알아보고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죠.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잖아요. 시대와 상황이 다를 뿐 지금도 충분히 내용만 바꾸면 맥락이 맞닿아있다고 느껴집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으면 쉽게 나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의 행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죠.
저번에도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 중 한 부분을 인용했었습니다. 문학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죠. 재현하는 문학과 찾아가는 문학이었어요. 문학 자체가 어떤 형식으로 쓰일지는 작가가 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재현되는 문학과 찾아가게 만드는 문학이라고요. 독자 스스로 그 문학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작가와 대화를 하고 그 와중에 좋은 질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찾아가게 만드는 문학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문학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을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나'이 질문은 어떤가요. 2차 세계대전에서도 거시적으로 보면 어떤 한 개인은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만 스스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자각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개인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회적 기류에 편승해서 결국 나치당이 득세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하면 제 나름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영향력은 분명 있다는 거죠. 스스로 인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상대방이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도 스스로 생각을 하는 와중에 만들어져야 하는 것도 맞지만 독자들도 그만큼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요.
번외..
<먼 별>은 이 책과 동시에 1996년에 나왔던 소설입니다. 같이 읽으면 볼라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읽어보려고요. 1년 전에 <부적>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읽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아마도 최근에 세계사를 좀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배경지식이 생긴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전에 라틴아메리카 다른 작가의 책을 읽었던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
Q.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요?
A. 비타협, 권력 남용, 관용의 부족.
Q. 당신의 정신 상태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A. 거의 모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의 경계에 놓여 있지요.
Q. 생존 인물 중 누구를 가장 혐오하십니까?
A. 너무 많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습니다.
Q. 그렇다면 생존 인물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요?
A. 아르헨티나 5월 광장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을 존경합니다. (우리나라 광주 항쟁 때처럼 아르헨티나에서도 독재 기간 중 많은 실종자들과 사망자들이 생겨났다. 그 후 희생자들의 가족이 이 5월 광장에 나와 집회를 가진다.)
Q. 사회적으로 가장 과대평가되는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성공(출세). 하지만 성공은 절대로 덕목이 아닙니다. 그냥 운일 뿐이죠.
(생략)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