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를 읽고
최근에 읽었던 <보통 일베들의 시대>나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 나오는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기라는 것이 지금 현실이라고 느껴집니다. 평범에 대한 것만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사회가 경직되어 있어서 다양성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인 거죠. 그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단연 집입니다. 비중이 클 뿐이지 집만 가지고 있어서는 평범이라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잘했어도 직장이 있어도 결국 집을 가져야 평범해진다는 겁니다.
아래 문장처럼 모범시민의 모델로 간주된다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의 욕망이고 집을 가져야 욕망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집을 가진다는 것은 투자가치, 안정성도 가져다주지만 어쩌면 그보다도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모범시민이 되려는 욕망이 더 클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는데 집 가격이 많이 올라서 상속할 때 뿌듯할 경우가 줄어드니까요. 자기만족을 위한 집 보유가 더 맞는 분석이 될 거 같아요.
내 집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개인의 도덕과 가치관까지 내포한다. 이 욕망은 한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실현하는 사람이 모범시민의 모델로 간주된다. p.41
젠더화된 사회적 세계에서 강력한 소비자 정체성을 갖는 것, 즉 자가소유와 정상가족을 이루는 것은 곧 좋은 삶을 획득하는 지름길이다. p.42
우리나라 사회가 내세우는 평범한 모습 중에 하나는 가족주의입니다. 최근 독일문학을 하면서 읽게 된 독일현대문학에서는 독일의 문화를 잘 나타내주고 있더라고요. 독일은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를 낳기도 하며 대학생 때 아이를 낳으면 보육제도가 잘되어 있어 나라에서 아이를 거의 키워주는 것을 이번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어쩌면 가족주의 문화는 미국에서 우리가 수입해 온 신화의 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요.
'가족임금제'... 사회핫의 계급연구에서 부인의 귀속계층이 남편의 그것과 동일하게 간주되는 것도 이에 따른 결과다. p.48-49
가족을 내세워 사회를 안정시키고 많은 가족이 집을 가져야 성공했다는 인식은 이제는 마치 폭탄 돌리기와 같습니다. 가족이 해체되어 가는 중인데도 가족단위의 집구조 그대로 아파트를 짓고 분양을 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 하락뿐만 아니라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있는 서민들에게 가장 타격이 큽니다. 지방에서 예산을 세울 때 인구가 증가한다는 가정하에 핑크빛 미래를 그리며 계획을 만드는 것이 문제라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반적으로 핑크빛 미래만 그리면서 부동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집값 상승의 신화는 인구가 증가하고 가족주의 신화가 뒷받침되었을 때 유효했다면 이제는 아닐 수 있잖아요.
역대 정부가 집값 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았지만 실제로 집값은 꾸준히 상승해 왔으며, 이는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집을 사두면 가격은 오른다'는 믿음은 도시의 공기에 스며들었고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하나는 '패닉바잉'처럼 어떻게든 주택을 매수하고자 하는 집단적 상태이고, 또 하나는 싼값에 주택을 매수하고 비싸게 매도해 자본이익을 남기는 것을 추구해야 마땅한 가치로 여기는 현상이다. p.187
역대 정부가 집값 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고 했던 정책 중에 성공한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예전과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며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이야기한다면 과연 가능할까요. '패닉바잉'이나 자본이익에 더 이상 기대지 못한다면 폭탄은 터지고 말 겁니다.
폭탄은 명백히 책임전가의 형태로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플라스틱이 만들어졌고 결국 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환경위기가 부각되고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의 상승과 기회주의적인 투기로 인한 책임은 그로 인해 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의 세금은 고사하고 '운'의 레토릭을 거쳐 면죄부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부동산 투기 혹은 투자로 얻은 초과 이익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결국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패권이 미국으로 이동했으며 산업이 발전하고 그로 인해 일자리 확보나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게 된 거죠. 1929년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 발발에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참 답답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기 전 사람들은 거대해진 자본시장에서 부를 축적하고 그로 인해 버블이 형성 돼버렸는데 그 위기는 다른 사람들이 극복해야 한다는 거죠.
'운'의 레토릭을 거치면서 주택실천의 장에서 벌어지는 기회주의적인 투기의 맥락은 흐릿해진다. 더 나아가서 '운'의 레토릭은 이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정한 게임'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가져온다. '운'이라는 요소 때문에 언제든지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처럼 생각되고, '운'이 개입되는 이상 누구든, 언제든 이 투기적 주택실천의 장에 진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운'의 레토릭은 부동산투기로 얻은 초과 이익이나 손해에 대한 정치적 가치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투기이익 환수를 재분배 정의로 제안할 때 장애가 된다. p.240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불안의 내사화'라는 단어를 이야기합니다. 불안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특징을 일베가 나타낸다고 하더라고요. 일베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원인제공을 했겠지만 좀 더 멀리서 보면 구조적 원인도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면 구조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긴 채 구조적인 부분을 사회에서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삶의 어느 부분에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적 개선을 위해 정책을 만들었잖아요. 이제부터라도 정책을 좀 더 고민해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사적 측면에서 '공인중개사 제도'의 도입은 이 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62년부터 1983년까지 소개영업법 하에서 운영된 소위 '복덕방'이 중개업으로 변화했다. 1983년에는 소개영업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다. p.74
여성주의 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 세우는 것과 거주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라면 그 조건의 암묵적인 전제가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의 껍데기만을 세우는 행위가 아닌 집을 집답게 만들어내는 행위는 무엇이며, 누가 그 행위를 하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103
집을 세우는 것과 거주하는 것의 차이가 여러분도 있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예전에 업무 때문에 혼자 자취를 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그냥 집이 있었던 것과 지금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집의 차이가 느껴져요. 집은 식물처럼 신경 써주고 애정을 주지 않으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재생산노동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지 못하더라고요.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은 이 일을 사회적 재생산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사람이 하루치의 생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재생산노동이 필요하다. p.105
지금까지는 집에 대한 인식이 재테크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수준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저는 한 명 한 명의 인식 변화로 큰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써보는 것이 효과적이라 한번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