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답장
유정님에게
저는 중학생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교부터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순종적이었던 유년기가 끝난 거죠. 저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밤새 몰두한 시기였어요. 그 이후 쭉 제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는데 별다른 후회는 없어요. 다만 가장 집중력이 높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저 같은 독특한 학생까지 포용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학교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아요. 하지만 그 시기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뭐든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사회규범이 생겨난 이유와 그것이 개선돼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 과정에 도움이 되는 사고력, 태도, 토론방식을 모두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 우주와 자연에 대해서도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아울러야 하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를 알아가는 것을 돕는 것이라 생각해요. 건강, 습관, 취향, 정서적 패턴, 정신적 경향 등 “나”를 이해하는 시간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와 세계를 연결할 수 없고, 연결할 수 없으면 참여할 수도 없죠. 톨스토이와 토마스 만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살면서 자아성찰과 세계참여를 조화시키는 나만의 다리를 건설해야 하는데, 학교가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의 가장 큰 선생님은 사람들, 특히 제가 선택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었어요. 유학을 간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 취미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 책에서 만난 사람들. 제가 가진 다리 역시 그들의 다리를 보며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죠. 좋은 다리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맞는 다리를 건설할 확률이 높아질 거라 생각해요. 기왕이면 튼튼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다리를 건설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왕래하고 영감을 받는다면 좋지 않을까요.
“안갯속을 헤매다가 안개가 걷히고 나니 발자국이 나란히 있는 것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쓰신 부분에서 심쿵했네요. 나에게 꼭 맞는 좋은 길동무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살면서 종종 느끼거든요. 다정하지만 의존적이지 않고, 존경스럽지만 일방적이지 않고, 듣기 좋은 말보다 진리를 말해주는 그런 길동무. 저부터 누군가에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동기부여가 되고 이정표가 되어주는 든든한 길동무가 되어주어야 하겠죠. 안개가 걷힌 후 발견한 나란한 발자국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너는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와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한 사람이 바로 여기 있었어.’ 홀로 걷는 인생길이지만 때로 이런 조용한 연결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과 정서를 이미지화시키는 것,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체험시키는 것이 시인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민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