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편지
대화나 소통이 일방향으로 진행될 뿐 전혀 듣지 않고 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을 거예요. 최근에 그런 경험을 하니 잊혀 있던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이에요. 어쩌면 저를 이해하고 제가 '아'하면 누군가 '어'라고 대답하는 잘 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 말을 듣지 않는 감각이 더 발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네요. (민혜 님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빙빙 돌려서 써봐요ㅎ)
어렸을 때부터 혼자라고 생각하다가 이제야 나란한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금세 사라져 버릴까 제가 애써 붙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하면 저의 예상능력을 조금 의심하게 되거든요.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표현을 직접적인 말로 들을 때 가장 정확하고 와닿겠지만 누구나 상대방이 원하는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누가 어떤 표현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저는 해석능력을 발달시켜 왔는데 제 멋대로 해석하고 싶지 않아서 가끔 그 의미가 맞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원하는 사람과만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일하게 되는 환경은 저에게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고 있어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 자꾸 저하되는 거 같아요.
여기까지는 그저 그동안 답장하지 못했던 변명 아닌 변명을 위한 구차한 넑두리였네요ㅎ 앎은 해방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표현을 최근에 주워 들었어요. 책을 읽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뭔가 알게 됐기 때문에 그동안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짐작조차 못하고 어쩌면 현상을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보이거든요.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피곤하다거나 에너지를 더 써야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는 감당가능한 것 같아요. 다만 글을 써보면서 정리할 필요는 느껴요. 그런 면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민혜 님의 인생에 대한 기록을 계속해서 남겨주는 행위가 더 필요해졌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작은 변화도 많고 알아차릴 필요도 있지만 일상적이라고 느껴지는 반복적인 일로 가득 차 있는 와중에 신경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아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반면 엄청나게 큰 변화는 인생에 몇 번 있지도 않지만 에너지를 강제로 쓸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됩니다. 골목에서 빠져나가려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야 하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쳐서 결국 어려움을 헤쳐나간 경험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다음 챕터에 들어섰을 때도 노하우를 가져갈 힘이 생긴다고 전 생각해요. 그래서 민혜 님의 변화기록이 기대됩니다. 그 옆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꽤나 흥미로워요. 아마 저도 겪었던 경험이라 어떻게 다른 경험이 될지 궁금한 것도 있네요. 곧 직접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눌 날이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