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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Oct 04. 2023

카프카를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소송> <변신 시골의사>를 읽고

 카프카가 소설에 나타나는 은유와 상징은 지금의 현실을 비판으로 가득 채우고 있어 언제 읽어도 그 시대의 권력을 비꼬고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카프카가 공부했던 법학은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람들을 분류하고 규정짓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법원을 개인에 대한 통제에 중점을 두었고 그 여파가 개인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처음 등장부터 집으로 찾아와서 소송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통보하고 직장 동료까지 대동했다는 부분 때문입니다.

당신이 체포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일상생활도 방해받지 않을 겁니다. p.25
<소송>
그의 방을 말끔히 치워 버렸다. 그가 아끼던 모든 것을 그로부터 앗아 갔다. p.56
<변신 시골의사>
법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소설의 해석이 달라진다. 일차적으로 이러한 법원을 개인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한 전체주의적 지배 체제를 예견한 것, 또는 실재하는 현대의 사법제도에 대한 풍자로서 읽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p.336
<소송>


법과 의료화

 <소송>에서는 법이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통제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비판이 느껴져요. 모든 곳이 법원에 속한 상황이 마치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법의 감시망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것 같죠. 최근에 읽었던 <아프면 보이는 것들>에서 법과 마찬가지로 의료화도 개인을 통제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쓰이기 위한 도구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요. 법은 의료화와 비슷하게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드는 특수한 역할을 하거든요. 병원이나 법원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것이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분명히 그는 세상 경험이 많은 남자로서 다른 곳에서라면 들림 없이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고, 많은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렇게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을 못 하고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p.88
<소송>
제 아틀리에도 사실은 법원 사무처에 속합니다만, 법원에서 저한테 쓰라고 내준 것이죠. p.202
<소송>
의료화된 근대성과 일상화된 의료화

최근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에서 "존재론"을 내세우는 것은 내추럴리즘이 상정하는 강력한 인식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 중심주의는 주체의 인식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형이상학이다. 그만큼 주체 밖 존재들의 입지는 약화된다. 주체 중심주의의 인식론 존재론의 불균형을 균형 잡기 위해서 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존재론"적 전회는 촉구한다. 하지만, 근대 주체를 체화한 국민국가 의료 체계와 생의학은 여전히 인식론이 강력한 체계다. 그 속에서 몸의 행위성은 곧잘 침묵된다. 지금 시대에 의료화는 사회적 문화적 의료적 문제이면서 형이상학의 문제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의료는 몸과 내면을 분리하는데, 우리 자신의 존재에서 그것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이후 의료화 문제의 기저에 존재하는 내용이다. p.213-214

<아프면 보이는 것들>


권력이 추구하는 인간성 상실

 K를 감시하는 사람들은 이 세계의 부품 역할을 하면서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일을 하지만 실제로 일이 미치는 여파를 모른다는 점을 비꼬는 듯합니다. 자본주의 분업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성 상실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잖아요. 카프카가 지금도 많이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당시의 이야기가 아직도 유효하게 적용된다는 점일 겁니다.

하루 열 시간씩 당신을 감시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외에는 당신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말단 직원에 지나지 않아요. p.15
<소송>


이율배반적

 그러면서 K는 자본주의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 상황에 온전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소송>에 아직 미완성된 원고 중에 생각해 볼 행동을 보고 생각했던 겁니다. 개인적인 연줄을 가지기 위해 판사와 검사, 변호사로 이루어진 모임에 들어가 그 일원이 명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후에 검사와 친하게 지내기도 하죠. 이후 행동의 변화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옆에 거주하는 방을 허락받지 않고 열어보는 행동을 하면서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거든요. 마치 자신도 권력을 가지고 있고 이전에는 부당하다고 생각될 행동을 거침없이 한다고 생각해요. 현 체제를 의심하거나 불만을 품다가 인정하고 그 안에 들어가기로 한 건지 그 앞뒤 상황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 이후일 것 같아요. 카프카가 <소송>을 쓴 순서가 맨 앞과 뒤를 같이 완성했다고 했으니까 말이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인데, 바로 여기에 변호의 핵심적인 가치가 있다. p.144
<소송>
자신이 그런 모임의 일원이라는 것이 커다란 명예임을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었다. 그 모임은 거의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모임이었다. p.302
<소송>
그는 마침내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는데, 무슨 부당한 짓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p.300
<소송>


해결은 가능한가

 중간에 K가 인물들과 악수를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악수를 통해 굳건해진다고 표현하고 있잖아요. 계속 악수가 나오는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후에 읽은 <변신 시골의사>에 담긴 ‘학술원에의 보고’에 악수가 나오게 됩니다. 사람이 아닌 원숭이를 등장시켜 제일 처음 인간세상에 대해 배운 것이 악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수라는 것이 솔직함을 증명한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죠.

악수를 통해 더욱 굳건해지는 법이니까요. p.33
<소송>
[학술원에의 보고]
제가 제일 처음으로 배운 것은 악수였습니다. 악수라는 것은 솔직함을 증명하지요, p.138-139
<변신 시골의사>


 솔직함이 카프카가 생각하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에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피할 수 없었고 파국을 맞이하게 되잖아요.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말만 보면 카프카가 만들어낸 세상은 어둡고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죠. 그 와중에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처럼 가장 기본을 회복하길 원하는 대목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가장 처음 배우는 악수의 솔직함을 회복하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함도 포함되었기에 실현가능한 곳으로의 탈출을 희망하기도 했고요. 지금 이런 희망적인 말을 알아듣는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카프카 자신은 자신에게 솔직했지만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카프카가 진정 원했던 것은 우선 자신의 자리를 탈출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과감하게 나가는 것을 희망은 했지만 본인은 못하고 결국 그 안에서 죽어가는 결말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일반 청중이 이 사건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어쩌다가 그의 말에 설득당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p.61
<소송>
밤에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245
<변신 시골의사>


 어쩌면 변신에서는 예술을 통해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레고르는 연주에 매료되어 약간 앞으로 가 볼 엄두를 내 어느새 머리를 거실에 들이밀고 있었다. p.73
<변신 시골의사>

 *그리고 덧붙이자면 <프란츠 카프카의 생각을 읽자>를 먼저 읽은 것이 도움이 됐어요.



뭔가 학문적인 것처럼 여겨져요. 제가 어리석은 말을 했다면 용서하세요. 하지만 이건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는 무언가 학문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p.32
<소송>
법을 해체하며, 기호체계를 '탈영토화'하는 실험장이라는 것이다. 결국 '법'이라는 것은 어떤 초월적 세계를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물도 지니지 않는 '빈 형식'인 것이고, 법의 불가해성은 그것이 초월성 속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내재성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며, 법과 욕망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p.344
<소송>
돌연한 출발 "내가 '여기를 떠난다.'라고 했으렷다. 그것이 나의 목적지이니라." p.102
<변신 시골의사>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자유로써 사람들은 인간들 가운데서 너무도 자주 기만당합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헤아려지는 것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입니다. p.143
<변신 시골의사>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부터 의료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푸코가 떠오르는 독서모임이었습니다. 교도소가 사람의 몸을 구금하고 강제할 수 있는 법을 집행하는 유일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다니 너무나도 놀라웠어요. 필사적인 카프카의 글쓰기 그 태도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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