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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Oct 13. 2023

한국 근대를 살아간 여자의 집

<글로 지은 집>을 읽고

 그 시대를 살아간 강인숙 님의 실제 집뿐만 아니라 그에 얽힌 이야기가 같이 읽혀서 매력적이었습니다. 절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생활에 맞춘 집의 구조나 적응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많았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가 된 이후에 급격한 변화가 없어진 시대라 그런지 그때의 적응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드네요.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보편화된 이후로 아파트에만 살아본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자연스럽게 주택에 살았던 경험이 굉장히 적어졌고 지금은 일명 집장사의 집형태에 거주하기 때문에 개성이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와중에 다양한 형태의 주거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1900년대 중후반 집을 보여주는 일화가 옛날이야기 같아요.


 가족복지 제도로 인해 육아를 맡기러 이사한 것이 지금과 아직도 비슷하다는 사실에 경악했어요.

그런 과중한 가족 복지 제도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가족 부양의 과중한 올가미 때문에 박애주의가 성립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는 한국이 가족 복지 제도에 의해 유지되어 온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 복지 제도가 없는 한국은 사실 가족복지 제도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이다. p.74


 온돌이 우리니라 고유의 건축양식인 것은 일았지만 박물관에까지 도움이 되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새로웠어요.

온돌 난방법은 박물관의 수장고를 제습하는 데도 아주 효과적이다. 처음 문학관을 만들 때, 서가 사이에 난방용 코일을 한 줄씩 깐 일이 있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적은 비용으로 바닥부터 습기를 깨끗이 제거해 주는 기막힌 제습법이었다. p.271


 처마는 비가 올 때 운치 있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산 깊이 들어가지 못했는데 천장도 낮게 처마는 건물을 짓는다면 해보고 싶네요.

그 집을 짓고 나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천장을 높게 하지 말 것, 건물의 외벽은 벽돌이나 돌처럼 손 안 가는 소재를 쓸 것, 평지붕이라도 지붕에도 반드시 처마를 달 것 등이다. 그중에서도 처마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평지붕도 꼭대기층에서 처마가 십 센티 이상 건물 밖으로 나와야 벽에 때 줄이 덜 생기기 때문이다. 때 줄은 돌이나 벽돌에도 생기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처마는 나중에 해 달 수 없는 부분이니 미리 신경을 써야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비도 안 내리는 사막인데 오천 년 전 그 옛날에 평지붕의 신전을 지으면서, 탑문의 지붕에 반드시 처마 띠를 둘렀다. 그 튀어나온 부분이 건물의 수명을 높이는데 얼마나 기여도가 높은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p.335-336
비숍 여사가 연변 자치구에 가보니 우리나라 유민들이 너무 훌륭하게 커뮤니티를 경영하고 있어서 놀랐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한국인은 정부가 없으면 저렇게 출중해지는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초장기의 평창동도 그들과 비슷했다. p.359


 그 외에도 아이를 키우는 당시 워킹맘의 고충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로 옛날부터 혼자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일하는 다른 여자가 필요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고 결국 엄마가 도와주거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최재천 교수님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한 적이 있다는 일화가 떠오르더라고요. 새로운 집을 알아본 이유가 사실 아이 때문이었잖아요.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남자가 시작하게 되면 주택의 형태가 새롭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변화 없이 이어져 오거나 강화된 주택의 형태가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정 권력을 지닌 사람을 위해 획일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요. 앞으로 어떤 사회변화가 어떤 주택의 형태를 가져가게 될지 궁금합니다.


 강인숙님의 친구들을 언급한 부분은 자서전이라고 더 생각되더라고요. 저자가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집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글로 지은 집'이라는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과연 집은 이어령의 글 쓴 돈으로 산 집일까요. 아니면 강인숙의 노력으로 산 집일까요.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됐을까>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남성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동안 여성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흥미로운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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