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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Oct 17. 2023

정치와 법의 변경이 필요한 가족제도

<가족각본>을 읽고

 가족각본의 세상에서는 아이들이 불행한 세상입니다.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로 서울에 집중되어 살기 시작했죠. 그 당시를 살았던 분이 쓴 책을 보면서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사회 복지 제도가 없는 한국이 사실 가족복지 제도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였죠. 웃기면서도 슬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엄마는 양가 부모님의 병간호를 맡아서 해야 했어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 역할을 떠맡아서 해야 했는지 자각하지 못했었죠. 지금의 제가 그때의 엄마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도 확신이 들지 않아요. 아직도 가족이라는 복지 제도로 묶여 있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런 과중한 가족 복지 제도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가족 부양의 과중한 올가미 때문에 박애주의가 성립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는 한국이 가족 복지 제도에 의해 유지되어 온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 복지 제도가 없는 한국은 사실 가족복지 제도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이다. p.74

<글로 지은 집 | 강인숙> 중에서


 가족각본의 시작은 신화 창조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읽어온 동화와 그것을 자신의 아이에게 읽히는 보육자들의 시선이 아직도 그대로거든요. 심청전을 비롯해 제가 기억하는 많은 전래동화는 유교의 '효'사상을 강조하는데 신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전래동화보다 더 빨리 접하는 것은 그림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서 어떤 그림책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웨덴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당시 무민의 가족 구성이나 다른 그림책에서도 지금 정상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만 있었던 것 같지 않거든요.

 실제로 아래와 같이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것처럼 신화가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이 현상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라고 말한다. 남성이 힘이 더 세다거나 공격적이라는 것은, 실제로 사회적 능력이 신체적 조건에 좌우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험적 증거라기보단 신화에 가깝다. p.33


 신화라고 하면 역사적인 기반에 근거하거나 권력의 도구로 작동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잖아요. 책에서 가족의 어원은 소유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소유물은 아닌데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가족을 의미하는 영어 패밀리의 어원인 라틴어 파밀리아는 '가장에게 속한 소유물'을 뜻했다. 중세시대 파밀리아에는 아내, 자식, 노예가 포함되었다. 가장은 스스로 소유물이 될 수 없으므로 파밀리아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니 '가족'이란 오늘날의 의미와 같은 공동체 단위가 아니었다. 당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가난한 사람이나 노예의 경우는,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 일컫지 않았다. 기원적으로 가족은 엘리트 계층이 지배하는 소유물을 지칭하는 의미였다. p.28


 최근에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어서인지 법이나 제도에 따른 이데올로기가 굉장히 무섭다고 느꼈어요. 가족에서도 마찬가지로 법 체계 안에서 정의된 형태가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서 신동엽과 성시경의 성인물 대만편의 동성혼 합법화가 이루어진 2019년 이후의 대만을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아무래도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어요.


 결국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족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그전에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얼마나 많이 가족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논의의 장부터 마련해야 하는지 그전에 더 선행되어야 할 과정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는 일제강점기기에 일본의 가제도가 이식되며 호주제로 법제화되었고, 호주제는 2005년에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되었다.... 정작 한국에 호주제를 도입시킨 일본은 1947년에 이를 폐지했으니, 한국의 호주제는 폐지되기까지 꽤 오랫동안 세계에서 유일한 가족제도였다고 기록된다. 37


출산을 할 수 없는 동성끼리의 결혼이라니, 그럼 결혼이 더 이상 결혼이 아닌 거다. 결혼은 출산의 기반이라는 이상을 지키려면,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가 없게 된다. 46


지금도 혼외출생자는 태어날 때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라고 추정된다. 어머니의 경우 자녀가 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모자관계가 성립되고 양육의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반면 아버지는 따로 '인지'라고 하는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아버지가 혼외출생자를 자식이라고 법적으로 '인지'라면, 그제야 아버지로서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생부가 자발적으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생부를 상대로 인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해야 한다. '인지'하지 않으면, 생부일지언정 자식에 대해 권리도 의무도 없다. 52


출생등록을 부모의 권리나 의무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할 아동의 기본권으로서 인정했다는 의미다. 59


국가가 강제불임수술을 명령하는 제도는 1999년 2월에 폐기되지만, 모자보건법에는 지금까지 우생학적 조항이 남아 있다. 부 또는 모에게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한다는 모자보건법 제14조다. 불임수술을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우생학적으로 덜 가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섬뜩한 관념이 숨어 있다. 87


현재 한국에는 거의 10년 가까이 한국에 체류해도 가족을 동반할 수 없는 이주민들이 있다. 89


아동의 인생을 생각해 부모가 출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사회가 변화를 도모하지는 않겠다는 변명일 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이미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세상이란 뜻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을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등장하는 예측 불가한 구성원을 위해 변화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둬야 한다. 91


스웨덴의 성교육은 성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감정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129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고 위신을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136


기존의 가족질서를 따르라고 압박하는 대신, "다양한 연애, 결혼, 양육"이 "사회, 종교, 문화, 법률에 의해 형성"되는 맥락을 교육한다.... 이념의 주입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술적 접근이다. 학교가 이런 성교육을 실천하는 일이 어렵다면, 학교의 목적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146


5장에서 말한 가족이 명예를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현상도, 결국은 가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가족이 생존의 단위라면 '조건'은 중요하다. 151


최근 학자들은 마치 중세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계층의 분리와 세습 현상에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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