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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Nov 09. 2023

지방소멸은 결국 공멸로

<전라디언의 굴레>를 읽고

 특정 사회문제는 총 3단계를 거쳐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익스플레인 시리즈를 보던 중에 알게 된 방법입니다.


용인


 수용의 1단계는 '용인'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들과 있으면 좀 불편하지만 그 사람들도 인간이니 쓰레기 취급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는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용인'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언어와 지방소멸의 공멸이었습니다.


 최근 브루디외가 주장했던 언어가 가지는 위계질서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전라도 출신이라는 딱지가 지금도 유효하게 작용하는 부분 중에 제가 느끼는 것은 유일하게 언어입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바로 알아볼 수 있잖아요. 마치 피부색과 비슷하죠. 서울 출신으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지점이었어요. 서울 출신으로 표준말을 쓰면 한국에서 어딜 가든 언어를 조심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반대로 사투리를 쓴다는 것이 위계를 만들고 위축된다는 주장이 그럴듯했습니다. 지금 저에겐 지방에 대한 편견이나 사투리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지만 지방사람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예를 소설로 알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다룬 <나폴리 4부작 | 엘레나 페란테>, 프랑스의 브르타뉴를 다룬 <브르타뉴의 노래 | 르 클레지오>,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영상까지 언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지방소멸로 인해 공멸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을 다 같이 인정해야 하는데 그 문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지방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몰랐을 때 지방이 소멸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몰랐거든요.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지방도시살생부 | 마강래>라는 책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누군가 어떤 곳에서 거주하려면 필요한 기반시설이 있습니다. 상하수도, 전기, 도로 등이 필요합니다. 한적한 곳에 한 명이 산다고 해도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효율성과 비용 측면에서 보면 한적한 곳에 한 명보다는 여러 명이 거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방의 경제가 안 좋아져 인구가 줄어들면 기반시설을 유지보수하는데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지방소멸이 곧 공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이런 사실이 공론화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을 쓰는데 효과가 없다는 인식만 언론에서 이야기한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일부 사실이기도 하지만 지방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는 지방자치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에서 지방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지역이기주의도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이겠죠.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인식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용인'되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합법화'까지는 요원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어떤 방식으로 인식개선이 가능한지 해결책은 모르겠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어려우니 앞으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합법화


 수용의 2단계는 '합법화'입니다. 예를 들어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와 여태 닫혀 있었을지 모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그것을 법제화하는 방안입니다. 책에서 예시가 많이 나왔는데 인상적으로 본 것은 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특화산업을 육성하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모델입니다.


 합법화가 인식 개선 후 빠르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권신장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자들이 전쟁터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얻게 된 여성들이 생겼고 사회진출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런데 전쟁 이후 남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사회시스템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전쟁 후유증 극복이나 여성들의 일자리 보존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성 기본권뿐만 아니라 인권이 30년 이상 퇴보하게 되죠. 그렇다면 법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바로 정치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합법화를 하려면 정치가 빠질 수 없습니다. 정치를 통해 시민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것이잖아요. 책에서도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호남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엘리트로 분류되면서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합니다.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그건 너무 어렵습니다. 차라리 정치인을 키우는 편이 더 쉬워 보이기도 합니다. 길게 생각하고 호남의 이익을 대변하며 호남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을 지지하고 믿어줘서 정치인을 만드는 게 어쩌면 멀리 돌아간다고 느낄 수 있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요.


무의식적인 편견, 그 외 쟁점들


 마지막 3단계는 무의식적인 편견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이 단계에 대해서는 굳이 할 이야기가 없네요. 아직 2단계까지도 요원하기 때문인데요. 우선 1단계와 2단계를 어떤 방법을 통해 해결해 나갈지 논의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책에 언급했는데 빠뜨린 것 중에 기업가와 중산층이 없다는 이야기가 지금의 호남을 만든 원인 중 하나라고 언급했어요. 그 원인은 지금 호남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전략적으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기업을 밀어줬던 정책이 그 당시에는 빛났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조차 살아 숨 쉬게 하지 못하고 있죠. 경제체제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에 따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중산층이 없어졌다는 것도 잠깐 나오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는 40-50대 이후 사람들과 아직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20-30대 사이의 차이 때문에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끊기고 있습니다. 이 또한 부동산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호남만의 문제로 생각하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광범위하네요.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문제보다는 지방에 국한되어 생기는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아요. 일례로 지방소멸로 접어드는 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일자리, 병원, 주택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빠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질도 하락하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단지 보이는 숫자만 늘린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저도 의문이 듭니다. 어떤 해결방법이 있을지 말이죠. 이제는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는다면 향후 닥칠 지방소멸로 인한 피해는 우리 모두가 받게 될 겁니다.


 그 외에 정경유착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전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수치가 있지 않지만 제가 알기론 회사 내부의 문제를 인지하는 것은 내부자가 가장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내부자 고발이 문제해결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내부자 고발은 내부자를 궁지로 몰아넣게 되기 때문에 고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내부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겠죠. 여기서 내부자가 다른 커뮤니티나 사회에 적응을 다시 하려면 다양성이 전제가 되어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지방의 경우 학연, 지연, 혈연이 거의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그 사회 자체를 벗어나야 합니다. 한마디로 친숙한 동네와 사람들을 떠나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가족, 지역, 학교 등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입니다. 결국 내부자 고발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정경유착은 해결되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우리의 정체성 형성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독서모임을 하면서 조귀동 작가가 해제한 책을 예전에 제가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책 중간 소제목으로 왜 흑인을 언급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래에는 그 당시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들만 추려서 올려봅니다. 한번 해당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미국에서 부동산을 통해 사람들을 안 보이게 억압하고 차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 설계된 절망 | 리처드 로스스타인, 조귀동 해제>

은행들은 특별경계지역을 지정해서(레드라이닝이라고도 부른다. 은행과 보험 회사가 특정한 지역에 붉은 선을 그어 경계를 지정하고, 그 지역에 대출과 보험 등의 금융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흑인들에게 대출을 제한하거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대가로 지나치게 가혹한 상환 조건을 요구하며 차별적 금융정책을 폈다. p.5-6


보통의 경우, 위원회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구가 이사 오기 시작하는 주택지가 있다면, 그곳을 도시 구역상 주택 지구에서 산업 지구로 변경했다. p.90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집을 짓는 것을 막기 위해 사유지를 강제수용하고 토지의 용도를 변경하는 수법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거의 일상적으로 쓰였다. p.196


지금까지 사실상의 흑백 주거 구역 분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던 공통된 논리는 대부분의 흑인 가정이 백인이 주로 사는 중산층 동네에서 살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p.232


아프리카계 미국인 저소득층이 백인 저소득층보다 신분 상승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세대가 바뀌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있다. p.280


흑백 주거 구역 분리는 국가의 통치행위로 탄생했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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