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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Dec 06. 2023

만들어진 두려움에 저항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

 우선 책 후기에 앞서 책 제목과 부제에 대해 잘못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연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모두 잘못 쓰인 단어라는데 이 책을 읽은 모두가 동의했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 단어 말고 다른 어떤 제목과 부제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원제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우선 '연민'이라는 단어와 '건너는'이 뜻하는 것이 마치 상위 하위가 있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단어였습니다. 특히 두 단어가 같이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들었어요. '우아하게'라는 표현도 사실 다른 단어가 없었다면 본래의 뜻처럼 마틴 루터 킹이 했던 우아한 투쟁에 어울릴 텐데 그 의미를 퇴색시킨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방법'이 나오는 책이 아니었음에도 부제에 방법을 쓰면서 마치 해결책이 책 전반에 걸쳐 나올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본래 이 책의 취지와 전혀 부합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책 내용은 잘 읽히고 좋았기 때문에 제목과 부제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결론입니다.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이 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 The Monarchy of Fear: A Phil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이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단연 '두려움'이다. p.5


 두려움이라는 군주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현실이 지니는 위기를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겠죠.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동물적인 감각 중 하나가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필요한 이유가 생존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그 예로 아이가 태어나서 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기본적으로 위험에 대해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아이들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이에게는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다고 말이죠. 예전에 높은 곳에 유리를 놓고 그 위를 아이가 지나가는지 아니면 무서워서 지나가지 못하는지 실험을 했어요. 결국 아이는 높은 곳에 있는 유리를 지나갑니다. 높은 곳에 대한 인지가 없어서 그 위를 지나간걸 수도 있고 지나가는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죠. 두려움이나 무서운 감정은 학습되는 것이 아닐까 해요. 여러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호기심이 많아서 할 수 있는 행동이 많거든요.


 저자와는 다르게 두려움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이 있을 뿐이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아예 없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학습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학습을 통해 두려움을 느낄까요. 아마 보육자의 '안돼' '위험해'와 같은 단어를 끊임없이 들음으로 인해 형성된다고 볼 수 있지만 직접적인 감정은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일 것 같아요. 실제로 다치는 상황이 발생해야 이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거죠. 그렇지만 많은 위험이 제거된 상황에서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싶어요.


 생존과 직결되지 않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형태의 두려움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공포 마케팅과 같은 상품이 떠오릅니다. 어떤 사회적 환경에 노출되어 학습했는지에 따라 두려움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같네요. 학습에 의해 형성된 두려움이기에 분노, 혐오, 시기로 변질되는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전략과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세상이 굴러가게 되었으니까요. 학습된 두려움처럼 감정을 학습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지탱해 줄 도구로 사용하는 거죠.


분노, 혐오, 시기로 발전하는 두려움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고려 거란 전쟁>에서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황실을 유지하려면 군주는 백성들에게 너무 다가가서는 안되며 자주 선행을 베풀지 않고 두려운 존재로 있다가 가끔 따뜻하게 해 주면 칭송을 받을 수 있다고 황후가 이야기합니다. 왕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갈등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와 반대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백성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리라는 믿음에 따른 왕의 행동에 일침을 가하는 황후의 태도에서 백성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 보이거든요.


정치나 일상생활에서 두려움과 별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영향을 받을 때 특히 위험해지는 세 가지 감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바로 분노, 혐오, 시기다. p.42


 두려움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가끔 읽게 되는 <한비자> 같은 책에서도 제왕이 가져야 할 덕목 중에 하나가 두려움을 잘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군주론>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있죠. 문제는 두려움 자체만을 이용했을 때는 그에 따른 부수적인 피해가 적지만 분노, 혐오, 시기로 발전하게 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데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에 굉장히 공감하며 다른 감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데 있어 주변의 도움이 있다고 판단되거든요. 얼핏 보면 분노, 혐오, 시기를 막을 수 없어 보입니다. 이미 사회적으로 실패가 가져다주는 두려움이 학습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단편적인 면을 학습하면서 다른 감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저자는 희망을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희망을 선택한다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늘 선택의 문제다. p.257

 

 저도 당연히 희망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아래 글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과 선택지를 준다는 것이 굉장히 실천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아이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수업을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느껴지거든요.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상황을 대입시켜 스스로의 행동을 돌이켜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해결책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여러 책에서 글쓰기의 좋은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어 글쓰기를 돕는 것을 좀 더 확장해보고 싶어요.


경쟁 대신 협력이 필요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드라마나 음악 등의 예술 과목을 육성해야 한다. 최근에 나는 공립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집단 치료가 포함된 커리큘럼과 인상 깊은 교장 선생님의 열정으로 아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해 큰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술 과목이 없었고 심지어 시도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창의적 글쓰기 수업 개설을 제안했고 그 수업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다. 아이들은 이제 격동의 감정을 발산할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p.189


 장기적으로는 루스벨트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회 안전망 건설을 하고 싶어요. 특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우선되어야겠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해서 고통을 치료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일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그런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이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두려움의 고통을 치료하는 해독제는 고난의 시기에 의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건설이라는 그의 말 역시 옳았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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