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고
1933년 히틀러를 수상 자리에 앉히는 것을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타협해 합의안을 마련했던 역사(p.23)를 지금 미국 공화당이나 우리나라의 국민의 힘에서 되풀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이 책에 나온 사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어 비교해 보면서 읽었다. 그리고 정치학자 후안 린츠가 썼던 책에서 잠재적인 독재자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pp.30~32)에 트럼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섬뜩했다.
놀랍게도 우리보다 먼저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해서 그에 대한 책을 냈지만 트럼프는 두 번째 당선으로 대통령이 된다. 우리는 이제부터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아주 좋은 기회를 대통령이 주었기에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저 지식에 그치는 게 아니고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지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2050년 즈음에는 우리가 어떤 책을 읽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이 책에서는 정치적 상황을 시간 순서에 따라 살펴봤다. 그러면서 정치가 변하는 순간에 대한 결과를 기록했다. 어쩌면 여기 적히지 않은 과학기술의 발전의 여파가 정치를 변하게 했던 주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IT기기의 보급률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와 관련된 책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물론 전반적인 분위기가 빌 클린턴 대통령 때 필리버스터가 1년 동안 무려 80회(그전에는 연간 일곱 번을 넘긴 적이었다)에 이르렀고(p.190) 심지어 1998년 12월 하원 투표에서는 빌 클린턴을 탄핵하려고 했었다. 게다가 텍사스 선거구 조정안으로 공화당에 유리한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 공화당이 안전하게 하원을 장악하게 됐다(pp.196~197). 우리나라에서도 따라한 전략 중 하나인 대법관 임명을 원천 봉쇄하면서 실질적으로 그 수를 줄인 경우(p.210)가 있다니 놀라웠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를 본받아 따라 했을 거라 생각된다. 지금도 트럼프의 전략을 따라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나.
가장 마지막으로 짐 크로 법 시절의 남부를 떠올리는 유권자 신분확인법이라니 정말 놀랍다(p.232).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다소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공화당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사례를 제시해서 좋았다.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의 한계로 받은 대로 갚아주려는 게 1차원적인 생각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같은 방법은 다시 먹히지 않을 거다. 더 새로운 방식으로 해야 할 텐데 과거에 그에 맞서 성공했던 사례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사가 대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야만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강점일 수도 있지 않은가.
개인들의 선의에 기대는 방법과 더불어 정책이나 제도적으로 구비해야 할 시스템도 있다. 주요 정당이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당 내 경선 시스템이나 공천은 깜깜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 체계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너무 필요하다.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공천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공천권을 얻기 위해 정당의 잘못된 행동에 동조해야 하는 전체주의적 운영에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2년 대선 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 시스템에서 당 지도부에 의존하지 않고 유권자에 의해 후보 지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정당의 문지기 역할을 무력화시키고 인기투표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pp.64~65). 더 민주적으로 생각되는 제도가 과연 문제일까? 시민들을 믿지 못하고 엘리트 위주로 돌아가는 정치 시스템이 신뢰를 얻으려면 그저 존재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탓에 결국 시스템이 붕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도 그저 존재만 하는 구조가 아니다. 다 같이 열심히 지키려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었고 이번 계엄사태로 인해 깨달았을 뿐이다. 바뀐 것은 없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과연 그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당연히 각자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탄핵안이 통과했고 계엄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진실은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2024년 말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가 있었지만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과 언론보도가 진행된다고 느낀다. 비록 완전히 바뀌지 않았지만 모든 변화는 점진적이다. 끈기 있게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이긴다. 작년에 읽었던 <한국 요약 금지>라는 책에서 한국 사람들은 미래를 좋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저자가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여전히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나 기대를 품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조금만 불씨를 던져주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불씨를 꺼뜨릴 수 없어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