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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우는 세상

아홉 번째 편지

by 태양이야기

민혜님에게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쓰게 되네요. 그동안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었던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버텨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아요. 저는 생각보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조금 마비되어 있다고 느껴요. 대신 다른 감각도 수용체가 많지 않아 감정을 상대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단점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작게나마 느껴지는 감각과 감정을 소중하게 비축해 놔요. 그렇게 저장해 놓고 나중에 감각을 키우는 학습을 위해 사용해요. 민혜 님이 임신 기간에 언어를 뛰어넘는 교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저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교감을 계속해서 느껴요. 품에 꼭 안았을 때 아이가 말없이 꼭 저를 안아줄 때 느껴지는 따뜻함은 마음속에 있던 감정찌꺼기까지 깨끗하게 없애주는 느낌이에요. 이런 감정은 민혜님이 얘기한 것처럼 아이를 키운다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메커니즘에 속한다는데 동의해요. 그리고 임신으로 세상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은 전혀 비약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인구 생산의 주체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그러한 생각이 아직도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요.


이제 아이가 꽤 커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어요. 조금씩 세상에 대해 배워가는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저도 재교육을 받는 느낌이더라고요. 마치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듯해요.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된 이후에 보편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경험이 점점 없어지는데 중간에 아이가 생기는 경험이 다시 사람들을 같은 경험으로 묶어주는 것 같아요. 아마도 마지막 경험은 죽음을 향해 가는 노년 시기일 것 같네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사람들 사이의 보편 경험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우리는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박탈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못할 것 같아요. 저도 아이로 인해 제 인생의 일부분을 저 혼자 채울 수 없는 것과 비슷하겠죠. 이런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꼭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시대를 기억해야 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앞으로는 30대를 떠올릴 때 혹은 40대를 떠올릴 때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게 된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세대론이 과연 유효할지 말이죠. 세대론이 유효하지 않다면 앞으로는 어떤 그룹핑이 될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다양성이 화두인 세상에 공통점을 찾는 것이 의미 있을지, 파편화된 개인이 과연 어떻게 커뮤니티를 형성할지 궁금해요.


유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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