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답장
유정님에게
사전예고를 받았음에도 메일을 받고 잠시 당황했어요. 물론 반가운 마음이 더 컸지만… 글을 안 쓴 지 일 년이 넘어가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았어요. 노트북을 펴고 첫 줄을 쓰기까지 갈등 저항 혼란 등등 각종 과정을 거쳐야만 했지요. 여전히 남아있는 의심은 ‘내가 과연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인가?’ 예요.
아시다시피 출산 후 첫돌까지는 수면부족과의 싸움이죠. 그걸 일 년쯤 하다 보니 아주 천천히 어떤 변화가 일어난듯한데… 단순히 말하면 뇌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고 인식 감정 반응 표현 등등이 기존의 내 방식이 전혀 아닌 거죠.
처음엔 수면부족으로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나빠지고 집중력이 저하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일 년 넘게 그 상태가 지속되면서 몸이 적응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싶어요. 예전보다 정밀하고 논리적인 기능은 현저히 떨어졌어요. 대신 감각기능과 정서는 발달한 것 같아요…? 아마도…?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면적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느껴지고 그게 특별히 싫지는 않은데... 문제는 바깥에서 나를 보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아직 적응이 안 되네요. 이를테면 전에는 상상도 못 하던 카톡읽씹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한다던가,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다던가… 뒤늦게 알아채고 뜨끔한 적이 많은데 그러고도 잘 통제되지가 않아요. 그럼 이제 상대를 실망시키고 관계를 악화시킬까 봐 걱정이 되는데... 금세 까먹고 말아요. 거기에 쏟을 정신적 여유마저 지금은 육아에 쏟아붓는 듯해요.
아무튼 그래서 편지 쓰기가 지금 나에겐 상당한 난관이다… 유정님이 예전만큼 나와 대화하는 것을 즐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라는 변명을 길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 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대답을 드린 건 순전히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유정님의 제안을 듣고 살펴보니 소통에 실패할지라도, 자괴감에 빠질지라도, 그동안 내면에 쌓인 무언가를 글쓰기로 배출하고픈 욕구가 있더라고요. 유정님은 나의 그런 상태를 이미 겪어봤기에 적당한 때에 이런 배출구를 열어주셨구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유가 되는대로, 또 하고 싶은 말이 생기는 대로 열심히 해보도록 할게요.ㅎㅎ
출산 전의 기억은 거의 전생처럼 희미한데 유정님 편지를 받고 찾아보니 “임신이 제게 세상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일깨워줬다”라고 말씀드렸더군요. 그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는 안도감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제 상황은 생산의 압박보다는 돈의 압박이 더 컸는데 그렇다고 절박한 수준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외부의 압박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고립감, 권태, 무기력 등이 더 큰 문제였어요. 물론 임신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면제되기는 했지만 제 경우 그것보다는 “연결의 기쁨”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아요.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서인지 임신을 통해 타인을 품고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이 더 컸거든요. 그러고 보면 역시 인간에게 더 강력한 동기는 의무보다는 기쁨 같아요. 만약 내외적으로 임신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면 한 생명을 품는 일에 그토록 순수한 기쁨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는 놀라울 만큼 보편적 경험이더군요. 세상 모든 부모에게 공감하게 되고, 남의 아이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고, 아이에게 미소를 건네주는 사람들을 보면 인류애가 샘솟는…… 더불어 육아는 어쩌면 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듬는 자기 긍정 수업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이건 사랑으로 가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겠지요. 꼭 이런 경험을 직접 하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지만 않는다면 그 사랑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시절 고립을 겪으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잖아요. 혼자였지만 그건 결코 외롭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자기 내면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결코 소외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그때 생겼어요. 그래서 세대, 그룹, 커뮤니티에 관한 지금의 생각은 오히려 홀로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 때 더욱 깊은 연결이 가능해지고, 모든 사람은 혼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일 수 있다는 거예요.
고독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육아가 훨씬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갓난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죠. 하지만 가장 깊은 교감의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눈빛과 피부와 울음소리로만 이루어진… 소통은 언어로 하는 거야 라는 편견을 내려놓기는 끝내 어려웠지만 이를테면 원하는 것에 따라 울음소리가 조금씩 다르구나,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는구나 같은 사소한 것들에서도 교감은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언어가 없던 시절 원시인들도 아기와 이렇게 교감했겠구나 싶었죠. 타인과 이렇게 교감할 수만 있다면, 늘 함께 있으면서 서로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나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상대를 거침없이 받아주는… 그러려면 일단 핸드폰을 내려놔야겠다는 생각도…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어요. 수면부족과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지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마자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덮쳐왔어요.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올랐죠. “힘들면 약을 먹도록 해. 많이들 그렇게 그 시기를 보내.” 출산 전 들은 그 말은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이해하죠. 하지만 워낙 약을 싫어하는 터라 다른 방식으로 그 시기를 지나 보기로 했어요. 제가 가장 잘하는 방식이죠. 왜 그런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출산과 육아는 나라는 정체성이 뿌리째 흔드는 경험이잖아요. 사회적 나를 포기할 준비가 안되어있는데 갑자기 오늘부터 엄마로 변신! 당연히 그건 쉽지 않고 처음엔 의욕 충만하던 엄마들도 수면부족과 울음소리 병치레 잔소리에 몇 달 몇 년 노출되면 그때까지 부여잡고 있던 품위와 인간성 사회적 페르소나에 균열이 가면서 결국 떡진 머리에 민낯으로 한밤중에 뛰쳐나가 울면서 스타벅스에 가서 기어이 커피에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으로 속을 달래고 들어오게 되는 거죠… 여기까지는 쉬운데 그래서 이제 어떻게? 이걸 아직 모르겠어요. 이제는 엄마가 행복해야 애도 행복해라는 말이 와닿지가 않아요. 엄마의 행복은 무엇인가, 이걸 잘 모르겠거든요. 나는 엄마인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인데 다른 모든 것의 행복과 엄마의 행복은 공존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 균형은 과연 어디쯤 있을까… 한참 먼저 이 시기를 지나 본 유정님이 그 답을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민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