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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 시민인가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읽고

by 태양이야기

아마 2018년 즈음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배경지식도 전혀 없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고 모임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다시 펼쳐보니 그때 써놨던 메모가 잔뜩 발견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동안에는 정치 시스템이나 선거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일이 없었다. 최근 12월 3일 이후 급격하게 많은 책을 읽은 덕분에 다시 읽게 된 책의 내용을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 질문을 다루고 있어 몇 가지로 요약하기 힘들지만 예전에 메모해 놨던 내용을 스스로 얼마나 발전시키고 답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는 방식으로 정리해 봤다. 물론 현재 내가 인지하고 있는 지식의 수준에서 시도한 결과다.


1. 탁월성, 두드러짐이 측정될 수 있는가?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선거로 선출된 사람이 탁월한가?'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선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의 모습을 보자. 결격사유에 해당할 범죄를 저지른 사람부터 전혀 일반 시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자산가나 전문가라는 사람들 일색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대표된 사람들이 탁월한지 측정했던 기준은 낡은 기준이다. 전혀 젊은 사람들이나 시민들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측정의 기준은 내가 맞닥뜨린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본 경험이나 해결과정에 탁월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는 선출할 사람을 앉혀놓고 몇 시간씩 면접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면접을 보면 뭐 하나. 답변이 전혀 원하는 대답이 아니고 탁월하지 않은 것만 확인할 뿐이다.


2. 아테네는 3만 명 중 1명 현재 30만 명 중 1명 정치인

당연히 아테네 시대와 현대를 1대 1로 비교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그렇지만 약 10배 정도 차이나는 사람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단 한 명이 들어줄 수 있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스템 효율 등 과거와 달리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1명의 사람과 3만 명의 사람이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의 경우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동질 하다고 느껴졌던 집단이 3만이라면 지금은 30만 명이 1만 명씩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다양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더 복잡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대표성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 보자.


3. 무엇이 문제인가? 대표성이 떨어진다. 의석수를 늘려야? 비례대표를 더 늘려야? 옵션이 자리 말고 없는 것일까?

정치에 진입하는 장벽 자체의 문제가 크다는 걸 뉴웨이즈와 함께 하면서 깨닫게 됐다. 우선 이 책에서도 논의됐던 후보자의 재산 자격이 현재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휴직 제도 없이 퇴사를 하고 출마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커진다.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휴직을 못하는 상황이니 인재를 절반 잃고 정치 입문에 들어갈 사람이 남게 된다. 당장 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유입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 있고 무엇 때문에 정치 입문에 실패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된다. 그저 보이는 숫자로 비례대표로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4.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과정, 중요성은 누가 정하는가?

미국에서는 이미 이해관계를 위한 리베이트가 합법인 상황이고 우리 또한 정치는 돈 없이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조정에서 자본이 가진 힘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자본만이 중요성을 결정하게 될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해관계가 같은 집단을 만들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면 중요도가 커지게 된다. 이때 이해관계가 같지만 뭉쳐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 부동산을 예로 들어보면 세입자들은 같은 동네에 머무르지 못하고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한다. 집단을 형성하려고 해도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더 쉬울 텐데 이동이 잦다 보니 관계를 형성하는 것조차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집주인이나 부동산 중개업자의 경우 관계가 공고할 수밖에 없고 세입자는 상대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지 못하게 됐다. 그 결과 세입자를 대변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자본에서도 밀리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대신 목소리를 낼 정치인이 될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5. 추첨은 책임이 없다. 선거에서 다시 선출되려면 책임이 있다.

과연 이게 맞는 말인가? 자리와 제도가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가?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책임이라면 감시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추첨을 통해 잘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다시 뽑았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선의와 뽑히고 나서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란 믿음만으로 시스템을 만든다면 금세 무너지고 말 것이다.


6. 감시자는 누구인가?

시민이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은 여유가 없다. 그리고 어떤 복잡한 의사결정 진행과정과 결국 누가 키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교육이나 정치 시스템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게임 형식을 접목해 보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7. 공론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

그 당시 얼룩소를 만든 멤버도 함께 있었는데 아마 공론장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했기에 얼룩소를 만들었던 것 같다. 여러 시도들이 모여 변화가 되는 게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다. -루스베이터 긴즈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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