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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나와 숨 쉬기

<잠수 한계 시간>을 읽고

by 태양이야기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책이었다. 잠수를 할 때 반응이 두 가지라고 하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경험이 오래간다. 오랜만에 스쿠버다이빙을 했을 때 기계에 온전히 나의 생명을 맡기고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었다. 바다 수영을 해야만 했을 때 깊은 바다일수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검은 물이 온몸을 휘감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수영을 17년 했음에도 갑자기 수영을 하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그 상황을 극복하고 물속에 온전히 나를 맡길 때면 나 혼자 고독하게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쿠버 다이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왜 계속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답을 했던 것 같다. 격렬하지 않아서라고 했는데 그 안에 스쿠버 다이빙은 나에게 운동의 한 종목이라고 인식됐었나 보다. 바닷속을 탐험한다던지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던지 하는 영역에 스쿠버 다이빙은 속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현실 감각이 점점 둔해지는 바닷속에 오래 머무는 게 나랑 맞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늘 위에 떠 있거나 바닷속에 있으면 땅에 두 발을 딛고 있지 않아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운동도 땅 위에 발을 두고 하는 운동이 좋다.


스벤과 욜라가 들려주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섬뜩했다. 둘의 이야기 모두 사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니까 어떤 상황에 대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욜라가 말하길 테오가 없으면 스벤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p.159) 생각해 본다. 초반에 스벤이 '개입하지 않음(p.50)'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침이나 개입은 불가피하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저 싫다고 외면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와 닮아있어서 안타까웠다. 테오가 중간에 당신은 스스로를 최고의 개인주의자로 간주(p.134)한다고 말하며 특별하지 않고 단지 도망쳤을 뿐이라고 말한다. 테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 뒤에 안톄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당신을 너무 편하게 해 준 걸지도 몰라. 당신이 거듭해서 자신만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데도 난 그걸 용인했어. 결국은 모든 게 내 탓일 수도 있지."(p.213)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과 일치한다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의 세계를 한정 짓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교육은 결국 스벤과 같은 사람들을 양산하는 상황 같아 더 심란해졌다.


잠수 한계 시간이란 사람이 물속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p.54)이라고 하는데 스벤은 물속이 아니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계 시간이란 분명히 있는데 물 밖에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할까. 마지막에 다시 독일로 가겠다고 했다니 해피엔딩으로 느껴진다. 스벤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 보인다. 그들이 한계 시간을 느끼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궁금하다.


*유독 잘 읽히고 계속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율리 체의 다른 저작인 <어떤 소송>을 바로 구매했다. 어떤 내용일지 기대된다.


돌 같은 침묵은 항상 승리하는 법이라 웃음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p.19
그 정도 볼거리가 우리 인간하고 전혀 무관하게 생겨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p.23
좀 불편하게 자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법이다. p.29
서로에 관해 평가를 내리는 일이 나는 아주 싫었다. 그건 중독이다. 저주다.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하는, 서로에 관해 내린 평가로 이루어진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독일을 떠났다. p.45
그녀의 부재는 공간을 열어 주었다. 나는 확장되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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