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고 알게 된 세계 (3)

집의 안정성 vs. 접촉의 필요성

by 태양이야기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 p.297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부동산에 지치다, 삶에 지치다


집을 사고 나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동안 고군분투하면서 부동산을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마무리가 됐으니까 의지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수능을 보기 전에는 머릿속에 잔뜩 외우고 공부했던 지식들이 가득했다면 수능이 끝나고 나면 비워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더 이상 공부는 생각도 하기 싫고 공부하느라 못했던 것들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질 겁니다. 부동산도 우선 하나를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나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관심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주변 모두가 부동산에 관심을 둘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지 않는 이상 부동산 기사에도 전혀 눈길이 가지 않을 거예요. 굳이 알고 싶지 않고 속 시끄러운 이야기를 찾을 정도로 삶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 같아요. 당장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죠. 안정적인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제가 삼성에 다닐 때도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상태로 회사를 다닌 기간이 꽤 오래됐던 것 같아요. 회사가 주는 안정적인 상태의 안락함이 저를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그것이 마냥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안정성의 늪


사실 회사와 부동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안정성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그것이 지속된다는 환상을 믿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세상과의 소통이 중요하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이 보일 때 미래의 보이지 않는 가치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될 수 있죠.


현대 건축은 사적인 내부 공간의 면적을 늘려 가는 추세다. p.105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현대 건축이 그 안정성을 내부에 반영하는 것이 새삼스럽네요. 사적인 내부 공간의 면적이 점점 늘어간다는 이야기는 스스로 고립되고 소외되는 것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어요. 거꾸로 안정성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외로움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말이죠. 최근에 <고립의 시대>를 읽으면서 스스로 원해서 외로움에 노출된다기보다 주변 환경이 외로움의 방향으로 향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어 가지고 있는 공간을 최대한 사적인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세입자는 주택 보유자보다 더 자주 이사한다. 예를 들어 런던에서는 2016년 세입자 수가 주택 보유자 수를 따라잡았는데, 평균 임대 기간은 대략 20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세입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뉴욕에서는 2014년을 기준으로 이전 3년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수가 집을 옮겼다.
이 문제는 사회의 응집력 차원에서 중요하다. 항상 옮겨 다니는 사람과 한자리에 머무는 사람 모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웃을 잘 모르게 되고 고립감을 더 느끼게 된다. 이름조차 모르는 이웃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우유를 빌리거나 격리 기간에 장을 봐주겠다고 제안하기란 쉽지 않다. 조만간 살던 집을 떠나 또다시 새로운 동네로 간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의 마을 공동체와 유대를 쌓고 보탬이 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으려는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치솟는 임대료와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 가격은 도시 거주자가 공동체에 뿌리내리고 정서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지가 되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고립의 시대> 중에서


<고립의 시대>에 있는 문장을 발췌해 왔습니다. 세입자가 자주 이사를 하는 것이 결국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 모두에게 이웃을 사귈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주택을 보유하게 되면 이웃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해당사항이 없네요. 주택을 보유하게 되면서 안정성은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더 이상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갑니다. 주변 상점들의 유대와 교류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우리는 안정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는 접촉이 필요하다


창조는 다른 생각들이 만났을 때 스파크처럼 일어난다. p.11

<어디서 살 것인가> 중에서


집을 산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상황에 놓이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같은 상황이라기보다는 외로움에 놓이는 기간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머무는 것이 안정적이고 편안할 순 있어도 때로는 다른 생각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만의 세상 속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세상과 만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삶에서 누군가와의 접점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요즘엔 그런 접점을 애써 어딘가에 가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힘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추천받은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랜덤 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거나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제3의 장소>를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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