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기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 단위로 하루를 바라볼 수 있지만 나에겐 테트리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24시간을 빈 공간 없이 가득 채우는 게임 같다. 시간의 블록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쌓다 보면 하루가 끝나간다. 테트리스를 할 때 다음에 나올 블록의 모양이 보인다. 지금 나는 독후감을 쓰고 있지만 그다음에 어떤 시간을 보낼지 상상하며 당장 눈앞에 있는 블록을 둔 채 기다린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강박에서 나오는 행동일 수도 있고 많은 것을 하고 싶은 욕심일 수도 있다. 테트리스도 하다 보면 블록이 내려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다 보면 레벨업이 되는 것처럼 습관이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1년은 365일이다. 하루 단위로 일 년을 바라볼 수 있지만 나에겐 이것 또한 테트리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아니 이번에는 퍼즐이라고 생각해봐도 되겠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샀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가장 먼저 가장자리 퍼즐을 분리한다. 그러고 나서 색깔이나 무늬 별로 퍼즐을 구분한다. 그렇게 구분해서 퍼즐을 맞추면 좀 더 편하게 해낼 수 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도 하루 단위로 생각한다기보다 3개월이나 4개월 단위로 묶어서 생각한다. 일명 시즌제라고 불리는 나만의 시스템이다. 그 시즌 중에 술을 마시는 시즌이 생길 때가 있다.
술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술이 있어 좋다면 기꺼이 잘 마신다. 좋은 사람이라는 연결고리가 필요해지는 시즌이 있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요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듣거나 '아, 내가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다. 좋은 사람을 한 명만 만나도 좋지만 다 같이 만나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자리를 만들게 된다. 이때 술이 빠질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분위기에 맞는 술이 있을 때 첫 만남의 어색함이 조금 줄어든다. 쑥스러움과 설렘이 술의 필터를 통과하고 나면 즐거움과 반가웠던 마음으로 바뀌어 있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려면 그만큼 필요한 것이 체력이다. 아쉽게도 술과 체력은 서로 친하지 않다. 술을 마시면 체력이 조금 멀어져 있고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할 때 술은 없는 것이 좋다. 결국 시즌제는 술과 운동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시즌이 훨씬 길다. 술을 마시는 즐거움과 운동을 하는 즐거움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덕분에 술을 마실 수 있는 체력이 매번 준비되어 있어서 갑작스러운 만남과 술에도 즐겁게 응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만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술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시즌 배분을 잘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