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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맺는 고통에 관하여

두 번째 답장

by 태양이야기

유정님에게


진주를 맺는 고통에 관하여


진주는 원래 조개의 보호수단이라고 해요. 내부에 이물질이 유입되면 탄산칼슘을 분비해서 감싼 결과물이라고 하네요. 진주의 핵이 이물질이라는 것이 흥미로워요. 그러니까 조개의 입장에서는 외부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며 분투한 치열한 삶의 흔적인 거죠.


인간의 고통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제가 느낀 유정님의 존재감과 영향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던진 질문에 “진주”라는 답이 돌아왔으니까요. “진주를 가진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살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른 사람들, 그 고통의 경험을 눌러 담아 자기만의 보석으로 만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결국 우리는 아픔과 상처를 응시할 때에만 서로에 대한 이해에 간신히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그 상처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이 들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고통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그 어떤 위로와 공감도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진주를 바라보는 것, 나의 진주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극심한 고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하는 것, 그 고통이 진주를 낳았음을 통째로 긍정할 때 비로소 유정님이 말한 “자신의 진주를 찾고 스스로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은 왜 약한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지 못한가?'라는 것이 유정님의 질문이라면, ‘왜 고통을 겪은 사람이 더 이타적일까?’라는 것이 제 버전의 질문일 거예요. 세상이 악의적으로 약자를 향하는 것에 분노하기보다, 약자가 세상과 부딪히며 진주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보는 거예요. 그럼 진주를 만드는 데 이물질과 고통이 필수적이라는 관점이 생기죠. 이 관점에서는 타인과 세상의 폭력이 곧 내가 만들 진주의 크기와 빛깔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요. 그것이 곧 “고통의 가치”라 불릴 수 있을까요.


물론 인간이 매긴 진주의 가치는 일방적이지요. 조개는 그저 열심히 존재했을 뿐 진주를 과시할 의지가 없으니까요. "그깟 진주 없어도 되니 고통받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인간은 진주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의미와 영감을 떠올렸어요. 그저 열심히 산 흔적인 진주가 존재 자체로 다른 생명체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보면, 자연 속 존재들은 무심히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걸 실감하게 되죠. 그래서 감히 타인의 진주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간직한 진주의 가치는 곧, 그 사람이 감내한 고통의 가치라고요. 그리고 그 고통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요.


저의 진주를 바라봐 주셔서 감사해요. 유정님과는 다른 이야기를 지녔지만, 핵심에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답니다. 스스로의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진주도 찾을 수 있는 것이겠죠. 그 누구도 타인을 도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진주를 바라봐 줄 수는 있는 거라고, 마음속 돌덩이인 줄 알았던 그것의 가치를 일깨워 줄 수는 있는 거라고, 유정님께 전염된 희망이 속삭이네요.


민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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