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민혜님에게
'왜 고통을 겪은 사람이 더 이타적일까?'라는 민혜님 버전의 질문을 받게 되고 최근에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책이 떠오릅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사실 긍정적인 고통이라고 생각돼요. 먼저 고통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진주가 받게 되는 고통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자연에서 진주를 만들기 위해 감내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사람들에게 고통이란 어쩔 때는 감내하지 않아도 될 고통도 굉장히 많은 것 같거든요. 그리고 조개와 가장 다른 점은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종류와 크기가 계급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조개는 상대적으로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면 사람은 태어난 환경에 따라 주어지게 되는 고통의 양과 질이 달라요. 일명 능력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능력주의까지 이야기하기에는 제가 아직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서 이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네요.
세상은 모두에게 평등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도 똑같이 찾아올 순 없어요. 다만 민혜님의 질문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고통을 겪은 사람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왜냐하면 이타적인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안정적이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회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애써 구제하지 않는 합리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은 거예요. 너무 단계 없이 끝까지 나간 의견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네요. 오늘 독서모임을 했던 책과 이야기가 더 그 생각을 고착화시키고 있어요.
오늘 모임을 했던 책은 바로 <뭐든 다 배달합니다>라는 건데 배달 노동자를 직접 하면서 실제 이야기를 적었어요. 그 책과 같이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를 같이 읽었거든요. 오늘 논의됐던 주제 중에 하나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와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냐는 거였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그 내용은 따로 정리를 해보려고 해요. 이번에는 그저 사회적 약자로서 노동 현장에 던져진 이들의 고통에 대해 떠오른 제 생각만 얘기해보려고 해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과 사회적인 제도는 없잖아요. 그런데 구성원들의 총행복이 가장 커지게 하는 것이 공리주의라면 배달 노동자보다는 소비자 입장에서 배달비나 사용하는 데 있어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삶을 언론이 포장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소비하는 것에 이미 사회적으로 병들어 있으며 병들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연봉 1억 인 배달 노동자가 있다는 기사가 바로 그거예요. 배달 노동자의 노동 환경 실태를 알리기보다 그들이 이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소비자와 배달 노동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고 있던 겁니다. 플랫폼에 갇혀 실제 그 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 소외잖아요.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들을 소외하면서 고통을 생성하고 있는데 이런 고통이 사람으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결국 상대적으로 계층 구조 안에서 밑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와 이타심을 이용해 현 구조를 지탱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 거죠. 사실 오늘 모임을 하기 전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쁜 삶이 방해가 된다는 거였어요.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과 같다. 돌봄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바로 바쁜 삶이다. p.251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중에서
그런데 결국 아래 문장처럼 고통을 겪어낸 사람들끼리의 연대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물음으로 마쳐보려고 합니다.
연대는, 온갖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은 덜 겪도록 최대한 알려주는 것이더라고요. p.35
<깨끗한 존경> 중에서
아마 제가 이렇게 두서없이 마구 쓰면 민혜님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실거라 믿고 써서 보냅니다. 부탁드려요ㅎ
태유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