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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윤주 Mar 12. 2022

체념한다는 것

뭐가 이렇게 다 어려운지 


한창 아쉬탕가 요가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이 요가는 시퀀스가 정해져 있어서 매번 같은 순서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배경철학이 있는 데 이건 생략하기로 하고.

째뜬 난 그게 좋았다. 같은 동작을 하면 매일 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어서. 아쉬탕가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련을 위해 저녁약속도 안 잡을 정도로 진짜 좋았다.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게 그런 거였지 싶다.


지금은 이렇게 좋아했던 아쉬탕가를 1년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여름, 크로스핏을 하다가 오른쪽 발목 인대가 손상됐는데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발목이 너무 아프고 시큰거렸다. 무릎을 꿇고 앉는 것도 하지 못했다. 이러다 젊은 나이에 영영 발목 건강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다행히 좋은 병원에서 좋은 치료를 받아 지금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그런데 안 되는 건 있더라. 발목을 늘리고 그 자리에 압을 주는 게 아직도 힘들다. 아마도 발목이 매우 타이트해진 것 같다. 가부좌도 틀 수 없다. 아쉬탕가에는 지금의 발목으로는 할 수 없는 여러 아사나(지세)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텐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회피하기로 했다. 속상한 나를 보는 게 더 속상해서 아쉬탕가 안 하기로 했다.


오늘 오랜만에 옛 선생님을 만나 아쉬탕가를 하는데, 안 되는 자세에서는 그냥 안되나 보다 하고 말았다. 속상하지만 그냥 이게 지금의 나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런 게 체념인가. 그렇다면 체념은 참 무섭네. 시도도 하지 않게 만드니까. 그렇다고 계속 속상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어렵다. 역시 삶은 쉬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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