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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선 Aug 25. 2020

나를 예술하게 하는 섬

긴 제주여행을 마치며...


한라산 중턱,

포근하게 내려앉은 아담한 집에서

2년여의 일상을 보냈다.

짐을 정리하면서 벌써부터 오고 싶어 진다.

 

처음 이 집에 도착한 날, 늦겨울이었구나...남편이 집을 둘러보고 있다. 어쩜 이렇게 집이 ‘집’ 답게 생겼을까



이곳에선

동이 틀 때마다 잠을 깨우는 스타카토 새들이 있고

어떤 예술로도, 어떤 글이나 물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이한 안개가 있었고

과격하고 황홀한 폭풍우 뒤엔

스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등장한 산들바람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콜라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윽한 폭죽, 무지개는 또 얼마나 절묘했나

눈길을 돌리는 어느 곳이나

비밀스러운 신성이 은유로 존재했다.




좋은 땅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걸까

주말, 브런치 식탁에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보다

꽃과 꽃차, 나무와 계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고

자연에 달리 해 줄 것이 없다며

까만 봉지를 들고 산을 올라

쓰레기를 두툼하게 주워 내려오는 이웃들이 있었다.


어떤 대단한 존재가 제주도에 날 부탁해 둔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직접 따서 말리신 목련꽃차를 함께 마셨던 봄날. 저 꽃 세팅을 보라!




이곳에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것들이 자리를 바꿔 앉았다.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재배치되어

숨 쉴 공간이 생긴 것 같다.


너무나 인간적인 나는, 또 자리를 이탈한 감정들로

우왕좌왕 흔들리고 숨을 헐떡이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러다가도 모두 싹 쓸어버리고

더 멋지게 자리를 배치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느낌 아니까...


이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간다.

서울의 삶도 사랑할 것이다.

집 안엔 손바닥만 한 '정원'도 만들고 싶다.  

그 안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발견하고 싶다.

그곳엔 신선한 공기도, 푸른 언덕도 없고

스타카토 새들도, 활발한 시냇가도 없지만

매일 그곳에서 경이를 찾아낼 것이다.


그 작은 낙원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어느 날, 내 손 끝이 그 푸르름을 닮은

찬란한 시를 내뱉을지도 모른다.

그땐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그들에게 낯 뜨거운 입맞춤을 할지도 모른다.


긴 제주 여행을 마치며 다짐한다.

목적지만 생각하느라

내 머리 위의 하늘과, 발아래 땅이 주는 축복을

놓치며 사는 어리석은 여행자는 되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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