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_일사일언 연재_손유주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 공연장에 가는 것은 무엇보다 신나는 일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가장 가깝고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장에서 직업을 구한 다음부터는 아쉽게도 그 즐거움이 조금 퇴색되기는 했다.
공연 관람이 가져다 주는 일상 탈출은 사실 극장에 가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선 평소보다 조금 더 잘 차려입는다. 동반자가 있건 없건 공연장 근처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한다. 티켓을 받고 필요하면 프로그램 책자를 구매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는다. 인터미션 때 1부 공연을 간단하게 다시 정리한다. 공연이 끝난 후 감상평을 남긴다. 이렇게 나열하기만 해도 공연을 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면 공연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두세 시간 동안 마스크를 낀 채 숨을 죽이고 끝나면 박수를 아끼지 않는 관객을 볼 때는 객석의 열정이 무대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십 수년 전, 그날도 아마 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 체홉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본 저녁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제자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시고 프로그램 북을 손에 쥐여 주셨다. 공연이 끝나고 제법 선선해진 언덕을 내려올 때 작품의 주제를 물으셨다. 빗나간 내 대답을 “인간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평범하고 지루한 이 일상을 평생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수정해 주신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수차례 본 ‘바냐 아저씨’는 내게 늘 그렇게 남아 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이 감염병의 시대도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다.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이 무대예술을 경험하는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오래전 그날 내가 본 공연 한 편이,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고 무대가 준 감동이 알게 모르게 지금 내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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