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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un 11. 2018

에베레스트(2)
고소에 잡아먹히다

세계 7대륙 최고봉 등반의 기록

4월 9일


아침 기온이 쌀쌀하다.

침낭에서 나오기가 정말로 싫다.

해가 한참 떠오를 때까지 침낭 속에서 누에고치 놀이를 하고 싶다.


오늘은 고소 순응을 위한 날이어서 다소 여유가 있다.

뒤척거리다가 일어나 식사를 해결하고 대원들과 일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에베레스트뷰'에 올랐다.

대원들과 에베레스트뷰에서 히말라야를 바라본다


눈앞에 펼쳐진 히말라야의 광경이란, 필설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만년설이 병풍처럼 원경과 근경을 이루며 앞다퉈 하늘을 찌르려한다.

아마다블람(6,856m), 로체(8,516m), 에베레스트...


제일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는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는 백발마녀처럼 긴 설연을 날리는 장면이 압권이다.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금도 굉장한 바람이 저토록 심오한 눈발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지금 저 근방에 있었다면 바로 죽음이다.

죽음, 기가 죽는다.

바로 옆 로체는 이에 비하면 다소곳 얌전하다.

히말라야 등반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산악인의 유령비가 곳곳에 있었다

대원들과 모처럼 여유를 즐기다가 쿰중(3,780m)을 경유해 내려왔다.

쿰중에는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 등정한 힐러리 경이 세운 학교가 있다.

쿰중으로 오면서 가장 눈에 띤 것은 마을마다 터만 있으면 로지(lodge)를 짓는 광경이 보인다.

산등성이에 빼곡하게 들어선 남체와로지

로지는 네팔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간편한 숙박시설로 인기다.

로지를 짓기 위해 돌을 깨는 소리가 골짜기마다 마을마다 끊이질 않는다.

이는 그만큼 로지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운행 중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시설이 늘어나면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시설이 부족해져서 더 지을 것이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4월 10일

남체→데보체(3,710m)


오늘 일정은 만만치 않다.

높고 깊은 푼기텐가(3,250m)와 텡보체(3,860m), 두 개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숨을 헐떡거린다.

남체 아래는 좁교와 운행 속도가 비슷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녀석들의 밋밋한 속도도 여기서는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같다.

다행이 대원 모두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모두 나보다 젊어서인지, 항상 앞서가다가 쉬는 곳에서 나를 기다려 준다.


고소는 치료법이 없다. 그냥 참아내는 것 밖에.

고소를 막기 위해 비아그라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약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나는 아스피린과 다아아막스 등을 챙겨왔다.

통영에서 온 기호는 아마 비아그라 몇 알을 챙겨온 모양이다.

정~ 급하면 얻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일정을 정말 힘들게 마무리하고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침낭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마니석'. 돌에 불경을 세겨 넣어 신의 뜻을 품는다


4월 11일

데보체→페리체(4,240m)


어제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허벅지근육이 살짝 땅겨지는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한기가 밀여오는 게 어느새 히말라야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살짝 두려웠다.

 

며칠 머리도 못 감고 모자를 눌러썼더니 가렵다.

고소로부터 가장 잘 보호해야 하는 부위가 바로 머리다.

그래서 함부로 머리를 감지 못 한다.

혹시 모를 고소때문에 팀 분위기가 흩어질 수도 있기에, 이런 자잘한 괴로움은 참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오는 길에 본 아마다블람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기억난다.

세계 3대 미봉 중 하나인 아마다블람.

나도 언젠가 아마다블람을 가보고 싶다.


오늘 오르는 길에 여성대원을 업고 내달리는 외국팀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 고산병 또는 그로 인한 2~3차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고소의 가장 좋은 처방은 저지대로 하산하는 것이다.

무사하길 바란다.  

히말라야의 척박한 곳에서 무리지어 사는 산양


4월 12일

페리체→로부체


오늘은 확실하다.

몸살기운, 덜덜 떨리는 몸, 욱신거리는 머리.

완벽한 고소의 증상이다.

가만 보면 대원들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데 내색하지 않고 참는 것 같다.

그래도 젊으니 좀 더 낫겠지.

증상이 가장 가벼워 보이는 대원은 최인호 부대장.

항상 듬직하다.


등반은 체력부터 시작된다.

오늘 저녁은 고기를 먹기로 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고기를 입에 밀어 넣으니 잘 받아들인다.


아직 산 능성을 넘지 않은 마지막 햇살을 맞으러 대원들과 양지 쪽에 쪼그리고 앉았다.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나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트레킹이라면 낼 모래면 되돌아갈텐데.

우린 베이스캠프에 들어가면 언제나 나올 수 있을까?

기약이 없다.

대원 모두 무사하게 무용담을 나누며 이 길을 내려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몸도 차가워진다.

해가 넘어가면 바로 기온이 급랭하기에 빨리 방한조치를 해야 한다.  

 돌로 쌓아올린 벽체 ,지붕에도 판판한 돌로 덮힌 현지인의 임시 움막, 주변과 조화롭다



4월 13일

로부체→고락셉


베이스캠프를 들어가는 마지막 로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직까지 봄, 이른 시기여서 푸른 초원은 고사하고 새순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열대림을 지났고, 관목지대와 초원을 지났고, 이제는 모래와 자갈들만 뒤엉킨 지대다.

황량하다.


오늘 묵을 로지에 여장을 풀고 대원들과 칼라파타르 정상에 오른다.

바람이 너무 심하다.

날리는 눈싸라기에 통증을 느낄 정도다.


오락가락 눈앞에 병풍처럼 거대한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는 아직도 설연의 하얗고 긴 머리칼이 날리고 있다.

그 거대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주눅이 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계절풍의 영향인가?

 

아이스폴 하단의 하얀 빙설 위에 먼저 도착한 외국 원정대의 텐트가 무리지어 있다.

저기 어딘가에 우리 자리가 남아 있을지 걱정된다.

우리의 규모가 작으니 어딘들 자리야 만들겠지.

예약은 없고 오로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다.

먼저 보낸 셰르파 도로지와 밍마가 좋은 위치 잡았겠지.  

밝은 아이들의 노란 콧물이 왜그리 정겨운지 모르겠다


4월 14일

고락셉→베이스캠프(5,800m)


드디어 집에 입성하는 날이다.

모래 지대를 더더덜 거리며 점심을 조금 넘겨 도착했다.

모든 게 다 끝난 듯하다.

바보같은 생각이다.

이제부터 시작이건만.


이틀 전부터 앞서 보낸 셰르파와 우리 짐들은 도착하여 임시 막사가 갖추어져 있어 우선 쉬는 데는 문제없다.

이제 많은 날들 살아가며 하나 하나 보수하고 고치고 살뜰히 살피며 살아가면 된다.

오늘까지 며칠 동안 힘도 많이 섰는데 고기 좀 먹자.


올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업 등반대가 많은 사람들 데리고 중앙에 터를 잡는 바람에 우린 자연스레 사이드로 밀렸다.

그들의 장비나 컬러 분위기는 우리와는 너무 달라 보인다.

자신만만한 분위기는 더욱 그렇다.

난 매킨리니 아콩카과에서부터 저런 분위기 안다.

일단 산에 붙어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상황은 역전이 된다는 것을.

저 덩치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4월 15일


오늘은 야크가 옮겨놓은 짐을 정리하는 하루다.

공용품, 개인 짐, 식량, 장비 등등, 계획한 목록에 따라 분리한다.

오후부터는 라마제단 설치를 위해 돌을 옮기는 데, 그 동작이 슬로우모션이다.

고소때문에 빨리 움직임은 금물이다.

무거운 돌을 옮길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며칠 트레킹으로 야크에 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충격을 받은 발전기가 고장나 버렸다.

작동하질 않는다.

이러면 밤은 암흑이다.

고치는 데는 경호가 선수다.

풀어헤치고 조립하고 만지작거리고 시동줄을 잡아당기니 푸드드득 시동이 걸린다.

다행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태양광발전시설을 선택할 걸 하는 후회가 왔다 갔다.   


4월 16일


에베레스트 등반조로는 나와 기호, 도로지, 3명이다.

로체 등반조는 인호, 경호, 밍마, 3명이다.


처음 계획은 에베레스트 등정만 있었지만 카트만두에서 입산신고 할 때 에베레스트 바로 옆 세계 4위 고봉 로체(8,516n)까지 같이 등반하기로 했다.

대원들과 회의 끝에 소규모 인원이지만 두 팀으로 나누었다.

사고 없이 이 커다란 두 봉우리 등정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리도 이곳 입성을 알리는 기념촬영을 했다. 뒷편으로 크레바스가 즐비한 아이스폴 구간이다.


4월 17일


오전 9시부터 라마제를 지낸다.

올해 한국에서 원정온 경기연맹 팀과 전북연맹 팀을 초청하고 우리의 무사 등반을 위해 라마승을 모시고 라마제를 지낸다.

무사등반과 성공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올렸다. 맑은날 하늘을 보며 무사고를 우선 염두해 두었다


여기까지 같이 온 나관주 대장은 오늘 내려간다.

마지막 선물로 등반 마치고 축하파티 때 사용하라며 발렌타인 위스키 한 병을 주고 내려간다.

관주의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따라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4월 18일

베이스→아이스폴 구간


오늘부터 에베레스트와 로체로 첫 운행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는 제3캠프까지 같은 루트를 이용한다.

제2캠프가 전진캠프이자 등정의 전초기지가 됐다.


이곳 베이스캠프와 제1캠프 구간은 아이스폴이어서 크레바스가 살벌하게 숨겨져 있다.

깊이도 엄청나서 바닥이 어디인지 해아릴수 없다.

그나마 간격이 짧은 구간은 안심이지만 넓은 곳은 사다리를 여러 개 연결해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늘은 바로 제1캠프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3분의 2지점에 짐을 데포한 뒤 베이스로 하산했다.  


4월 19일

베이스캠프→아이스폴(5,900m)


베이스 생활 며칠째, 대원들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다.

나도 좋은 편은 아니다.

셰르파와 쿡들만 양호하다.

그들은 다른 팀의 동료들과 항상 재미있게 생활한다.

우리도 빨리 적응되어 저들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오늘은 어제 운행을 못한 기호, 경호와 같이 아이스폴 적응 차 5,900m지점까지 갔다왔다.

그러고보니 우리 대원 이름이 인호, 경호, 기호, 호자 돌림이다.

경호와 인호는 형제 사이이고, 기호는 경호와 동갑내기로 통영 한아름산악회 회원이다. 기호는 내가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 근무시절의 인연으로 알게 됐다.

이번 등반을 같이하자는 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지난 2년동안 준비와 훈련을 함께 했다. 인호, 경호는 남원의 큰바위산악회 같은 동료로, 경호는 2004년 나와 같이 매킨리를 등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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