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베이스캠프 체류
오늘은 베이스캠프에서 하루 쉬기로 한다.
대원들과 모처럼 고기도 구워먹고 집 생각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나름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데, 한편으론 복잡한 등반계획이 머릿속에 맴맴 돈다.
어제 고소적응을 하고 하루를 푹 쉬는데도 기호와 경호가 힘들어 한다.
아무래도 내일은 하산시켜야겠다.
우리 팀은 대원이 고작 네 명인지라 두 명이 내려가면 운행에 차질이 생길 터, 대원의 컨디션이 하루빨리 좋아지길 바랄 뿐이다.
이곳 캠프의 고도가 5,400m, 일반인은 하루도 버티기 힘든 높이다.
공기 중 산소농도가 평지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 역시 종일 심한 숙취처럼 머리가 무겁고 몸이 욱신거린다.
태양빛은 포근하지만 해가 저물면 얼음장 기온으로 급랭하기에 보온에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편하게 보냈고, 내일도 좋은 일정을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만년설 아이스폴 끝자락을 경계로 베이스캠프에 설치한 텐트. 오른쪽 눈사면은 눈사태의 흔적
4월 21일
베이스캠프→제1캠프
예상대로 경호와 기호의 증세가 심해졌다.
내려보내야겠다.
운행 비용과 간식 등을 챙겨주고, 이왕 내려가는 거 페리체까지 내려가서 다시 고소순응
을 하고 올라오라 일렀다.
둘을 내려 보낸 후 인호, 도로지, 덴지와 같이 제1캠프로 물자수송을 갔다.
요 며칠 아이스폴 사다리를 건넌 경험때문인지 이제는 제법 무서움이 덜하고 요령도 생겨서 주저없이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경험처럼 좋은 스승은 없나보다.
같이 하는 인호는 항상 듬직하다.
몸은 왜소해도 대단한 정신력으로 무장돼 우리 팀 부대장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인호를 보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이곳까지 꼬드겨 함께 왔는데, 부인이 이달에 셋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색 한 번 안 한다.
힘을 쓰고 나니 제1캠프 사이트가 눈에 보인다.
다 왔나 싶지만 걷고 또 걸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도착하고 나서는 진이 다 빠진다.
내려설 엄두가 나지 않고 움직이기에도 힘이 부친다.
인호랑 오늘 여기서 고소순응 겸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고 입맛도 없어 그냥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만다.
위협적인 아이스폴 크레바스. 회피하지 못할 상황이기에 친숙해 지기로 노력했다. 심각한 크레바스를 20여곳 지나야 캠프1과 2에 도착할수 있다
4월 22일
제1캠프(6,000m) → 제2캠프 (6,400m) → 베이스캠프
자고 일어나니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
인호도 좋단다.
좋은 컨디션으로 제2캠프로 이동한다.
제1캠프와 제2캠프 구간은 좌측 에베레스트와 정면의 로체, 그리고 우측 눕체에게 둘러싸여있는 거대한 협곡과 광대한 설원을 가로질러야 한다.
육안으로 약간 경사진 평지로 판단했다가 진을 다 빼고서 제2캠프에 도착했다.
고도가 6,000m를 넘으면서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걸음수도 대폭 줄었다.
짊어진 배낭의 무게와 짓눌린 어깨가 만만치 않다.
오늘따라 날씨가 쾌청해 햇빛이 하얀 눈밭에 반사된다.
반사된 태양 복사열에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다.
수통의 물은 이미 바닥.
인호는 나보다 30m 정도 앞서가고 있다.
여기서 굉장히 먼 거리다.
인호도 나처럼 힘들어 할까?
목적지 제2캠프가 시야에 들어온 지 꽤 오래다.
좁혀지지 않는 게 문제다.
보기보다 멀기도 하겠지만, 아마 내 걸음 속도가 늦어진 것일 수도 있다.
젠장!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있던 상게가 따뜻한 차를 건넨다. 아, 맛있다. 그리고 멋지다.
외국 팀도 이미 이곳 여기저기에 전진캠프들을 구축해 놓았다. 제2 캠프는 에베레스트 남벽 하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가끔 떨어지는 낙석의 거대한 울림과 흘러내리는 스노우 샤워 영상이 깊이 들어와 있음을 가늠할 수 있는 위치다. 오래 있을 수 없다. 베이스캠프까지 내려가는 일정이 남아있다, 좀 늦은 점심을 때우고 모두 베이스캠프로 내려간다. 역시 내려가는 길은 몇 배의 빠른 속도감이 있어 좋다.
제1 캠프를 지나며 내게 탈이 났다. 설사와 구토가 일회성이 아닌 수시로 일어난다. 몇 차례 반복을 해서 나올 게 없는데도 연신 구역질이다, 현기증도 나고 등짝에 땀이나 몽글거리고 정신도 오락가락 혼미하다. 오늘의 무리한 운행과 고소증세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듯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인호에게 배낭을 맡겨 내려보내고 축 풀린 다리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힘든 하루였다. 고소만 더 진행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료함을 달래고자 외국대원과 모자를 교환했다
4월23일
베이스캠프(5,400m) → 고락셉(5,200m) → 베이스캠프
간밤에 컨디션이 좋아져서 다행이다.
오늘 올라오기로 한 기호와 경호를 마중할 겸 인호랑 고락셉으로 간다.
처음으로 베이스캠프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마치 소풍가는 기분이다.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경쾌하다.
여기를 오를 때는 야크보다 엄청 느린 속도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야크보다 빠른 걸음걸이, 그만큼 적응이 된 것이다.
고락셉에 도착해서 삶은 계란과 달밧(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기호와 경호를 기다린다.
그 순간이 꼭 이산가족 상봉 전 설렘처럼 느껴진다.
고작 4명이니 얼마나 그리웠을까.
두 대원을 만나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이제야 베이스캠프가 활기를 찾는 듯하다.
같이 한 우리 셰르파 도로지와 밍마도 천성이 착하고 근면하여 항상 든든한 등반 파트너이다.
경호는 기계수리 기술이 좋다.
우리 팀 발전기가 낡아 고장이 잦았다.
이 발전기가 멈추면 칠흙같은 어둠이다.
몇 번 고장이 있었는데 경호가 해결했다.
오늘은 대원과 스텝 모두 식당텐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트북에 담아온 영화 한 편을 몰입하며 봤다.
잠시나마 집 생각도 덜었다.
별은 밤하늘에 빽빽하게 차고, 은하수도 선명하다.
가끔은 처량한 눈이 한없이 내린다. 꼼짝없이 침낭에서 시체놀이 하는 이 시간은 온통 가족생각 뿐이다
4월 24일
베이스캠프
오늘은 큰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곳은 굉장히 건조하다.
먹는 것 또한 싱싱한 야채가 거의 없어서 변비도 무척 심하다.
아마 이곳 모든 사람들의 생리가 다 그럴 것이다.
며칠의 변비를 해결하려면 큰 맘 먹고 상당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은 좁은 텐트 안에서 방귀가스 분출이다.
룸메이트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서로 참아줄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다음 원정은 필히 개인 텐트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겠다.
4월 25일
베이스캠프 → 제2캠프(6,400m)
오전 6시에 모두 기상했다.
오늘은 전 대원이 고소 순응과 물자 수송을 위한 운행에 들어간다.
제2캠프까지 순응된 나와 인호는 제2캠프에 머물고, 기호와 경호는 제1캠프에 머물 예정이다.
요즘은 주간 날씨가 좋아서 이동하는 날이면 우리만이 아니라 베이스캠프의 거의 모든 팀이 동일한 시간대에 움직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막히고, 끼어들고, 앞지르고, 마치 혼잡한 도로같다.
약간은 짜증스런 일도 발생하지만, 짜증내봐야 나만 손해다.
며칠간 고소에 순응되어 오늘은 가볍게 제1캠프를 거쳐 제2캠프까지 운행하였다.
며칠 전부터 완연한 봄날씨여서 주간 야간을 가리지 않고 눈사태가 잦다.
아이스폴 왼쪽인 에베레스트 남벽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장관을 연출한다.
보기에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아찔하다.
제2캠프 뒤편의 에베레스트 남쪽 벽에서는 주로 낙석 떨어지는 소리가 쩌렁쩌렁 계곡을 울린다.
모든 일이 우리와 직접 연관되지 않길 바래야 한다.
상게는 이곳 제2캠프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향을 피운다.
우리도 개인적, 종교적 신념을 떠나 현재 가장 가까이 있는 라마신께 무사안전을 바랄 뿐이다.
제1캠프의 기호와 경호가 잘 적응하며 밤을 보낸다는 무전을 보낸다.
4월 26일
제2캠프 → 베이스캠프
오늘 나와 인호는 베이스캠프로 하산하고, 제1캠프의 기호와 경호는 제2캠프까지 진출하는 일정으로 각자 움직인다.
확실히 운행이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우리가 이곳 환경에 잘 적응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대장은 기분이 참 좋다.
무엇보다 같이 온 대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이스폴에서 한 외국대원의 추락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구조는 됐지만 상태는 어떤지 모르겠다고 한다.
항상 신중하자.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경기연맹 남상익 대장과 이런저런 정보를 교환한다.
남 대장은 베테랑이기에, 여러 상황과 대처법을 물어봤다.
4월 27일
베이스캠프
제2캠프 대원들과 무전교신,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베이스캠프로 내려갈 것을 지시했다.
오후가 되니 베이스캠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기저기 술렁대고,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채화를 티벳 방향 에베레스트 북동릉을 거쳐 정상으로 가서 한다며 그 기간 네팔 영역에 있는 사우스콜 등반을 중단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다.
환장할 노릇이다.
채화가 성공할 때까지 기약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몬순으로 접어들어 등반을 끝내야 한다.
2년 고생하며 준비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나?
혼돈스런 하루가 지났다.
베에스캠프 옆 푸무리다. 얼마전 국내 등반대 사고가 있던 곳이다. 산은 높고 낮음에서 위험의 강도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