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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ul 12. 2018

에베레스트(4)
초조한 기다림의 끝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4월 28일

베이스캠프


올림픽성화 채화 성공 예정일인 5월 2일까지는 꼼짝없이 방학이다.

급기야 오늘은 네팔 정부에서 헬기로 군인들을 실어와 이곳 베이스캠프에 주둔시키고 밤낮으로 등반로를 지킨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성화 채화 모습을 위성으로 촬영하고 있는데,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티벳 독립 관련 사건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중국에 대해 네팔 정부는 갑을관계의 을처럼 움직인다.

들리는 말에는 카트만두를 떠나 베이스캠프에 들어오던 시기에 국왕이 왕궁을 떠났고, 새롭게 바뀐 의원내각제로 열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이 99%를 얻었다고 한다.

또 이날 오후에는 어느 원정대원이 '프리 티벳' 선언을 하다가 네팔군에 체포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무전기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외국팀 중에는 아예 쉬려고 페레체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다수 있다.

우리는 그냥 이곳에서 장비를 정비하고 고스톱으로 시간을 때우며 아까운 하루를 보내야했다.  


매일 향을 피우는 상게.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듯.


4월 29일

베이스캠프


날씨 좋은 하루.

이렇게 좋은 날씨라 더욱 아깝다.

몬순이 다가오는 시간은 째각째각 다가오는데...

오후에는 경기연맹 초대를 받아 점심식사로 비빔밥을 먹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곤 공기마스크를 점검하는 일상.

연일 계속된 온화한 날씨 덕에 이곳의 눈이 1m 이상 녹아내리면서 텐트작업을 해야 했다.


요즘 인호는 기가 쑥 빠진 모습이다.

말수도 부쩍 줄어들었다.

이제 곳 태어날 셋째때문에 불안해서 그런가보다.

마침 이곳에 들어온 김재수 대장이 위성전화를 갖고 있다.

김 대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성전화를 빌려 인호에게 건냈다.

마침 통화 연결이 잘 되었는데, 순산을 하였다는 기쁜 소식이다.

예쁘고 깜찍한 공주란다.

축하한다! 하하하!

대원 모두 인호의 셋째아이 출생을 기뻐했다.

근심거리가 사라지자 인호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팀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아이스폴 상단 거대한 눈처마 구간. 저곳을 오르면 1캠프가 시야에 들어온다. 불규칙한 눈덩이가 수시로 움직인다.


4월 30일

베이스캠프


4월의 마지막 날.

많은 원정대가 고락셉이나 페리체로 휴가를 떠나서 베이스캠프는 한가하다.

이곳에서는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다.

건조한 날씨와 높은 고도는 에너지는 지속적으로 빼간다.

모두들 환경에 적응했지만 체력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우리 대원들은 잘 먹는다.

가져온 쌀이 동이 날 지경이다.

그래서 쌀과 물소고기를 추가로 구입하기 위해 상게를 남체로 내려 보냈다.

무장한 네팔 정부군은 아직도 등산로 초입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간간히 에베레스트 상공을 선회하는 중국 정찰기도 보인다.

제발 하루 빨리 채화하길 바랄 뿐이다.

에베레스트 사면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눈사태가 나고 있다.

좋아진 날씨의 양면성 같다.  


5월 1일

베이스캠프


오늘에서야 우리팀 정부연락관이 도착했다.

정부연락관은 등반대가 네팔 정부에 입산 신고한 사항대로 이행하는지 감독하는 일을 한다.

보통은 등반 시작 때 감독하는데, 이번엔 이제야 도착했다.

감독이 없으면 우리야 좋다.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불편한 존재다.

연락관의 고소증세가 심한 것 같다.

우리 약을 건네주고 텐트로 안내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상황을 봐서 내려갈 모양이다.

이날 저녁은 모처럼 대원들과 남은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먹은 술이라 취기가 바로 오른다.

이곳에서 술은 조심해야 한다.

산소가 절반 밖에 안 되어 술 깨는 속도가 몇 배는 느리고, 숙취의 괴로움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0년 초오유에서 등정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에서 편하게 마셨던 술 때문에 엄청난 두통과 호흡곤란을 겪으며 며칠 간 생고생을 했었다.

 

 

출발과 마침을 항상 제단과 교감한다. 이 무렵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5월 2일

베이스캠프


남체로 내려 보냈던 상게가 올라왔다.

며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어 등반하기 좋은 날인데 마냥 보내기는 아쉽고, 또 이런 기상 은 몬순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리는 징조이기에 마냥 조급해진다.

상게가 사온 고기를 볶아먹으며 바깥세상 소식을 들었다.

걱정했던 대로 남체 아래로는 많은 비가 내리며 몬순이 시작됐다고 한다.

참 답답할 노릇이다.

자칫하면 등반이고 뭐고 짐싸들고 내려갈 판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북동능 성화 채화를 위해 구성된 중국팀이 제3캠프에 올랐고 서미트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렸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도 감감하다. 빨리 성공했으면 좋으련만.  



5월 3일

베이스캠프


이제 베이스캠프에는 우리 팀만 남았다.

외국팀은 모두 저지대로 내려가 버렸다.

오후부터 눈발이 날린다.

오랜만에 텐트와 베이스캠프 영지를 하얗게 뒤덮는다.

침낭에 콕 틀어박히니 나오기가 싫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이런저런 잡생각만 난다.

이런 땐 가장 먼저 가족이 생각나기 마련.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한국을 떠난지 딱 한 달 되는 날이다.

고향 남원 요천강변은 벛꽃이 만발하고 따뜻한 봄의 축복된 날이겠지.

집에 아내와 애들도 착실하게 생활 잘 하고 있겠지.

이럴 땐 괜히 서글프다.

몸을 씻은지도 오래고, 이쯤이면 침낭에서 홀아비냄새가 진동해 더더욱 바깥세상이 그리워진다.

잊는 데는 잠이 최고다.

유독 하루가 서글프고 길게 느껴진다.

저녁에는 경기연맹 팀 남 대장과 소주나 한잔 해야겠다.

   

5월 4일

베이스캠프


어제부터 내린 눈이 오늘까지 계속이다.

제법 많이 쌓였다.

그동안 잘 견뎌오던 우리 팀 정부연락관이 하산한단다.

아마 고소때문에 더는 못 버틸 모양. \

얼굴이 항상 부어 있어서 안쓰러웠는데, 아무튼 무사히 내려가서 빨리 건강을 찾기 바랄뿐이다.

성화 채화를 위한 중국팀은 아직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정보다.

중국 정찰기는 에베레스트 상공을 날아다닌다.  


눈이 녹아 바닥을 들어내면서 우리 속도 타들어갔다.


5월 5일

베이스캠프


어린이날.

목 매이게 기다리는 중국팀 채화 성공소식은 오늘도 없다.

베이스캠프에서만 체류하다 보니 먹는 양도 많았나.

식량을 또 조달해야 한다.

우리는 등반에 관한 모든 일정을 5월 25일까지 마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시간은 20여일 남짓이다.  


5월 6일

베이스캠프


반가운 소식이다.

네팔 정부에서 제1캠프까지는 주간에 운행 길을 열었다.

잠은 잘 수 없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조건이다.

덕분에 제1캠프까지 대원들과 현장 적응 차 운행을 다녀왔다.

모처럼 다녀온 길이라 저녁에 몸이 욱신거린다.

안 좋은 소식은 북동능 중국팀이 제4캠프가 강풍으로 날아가면서 정상공격에 실패했다는 소식.

우린 또 기다려야 한다.   


5월 7일

베이스캠프


등반길이 열릴 예정이라는 말이 돈다.

구체적으로는 10일 정도에 등반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좀 늦은 일정이지만 이렇게라도 된다면 마지막 딱 한 번의 기회가 오는 것이다.

팀 회의를 가졌다.

로체팀 인호와 경호가 먼저 등정을 시도하고, 그 결과를 보고 나와 기호가 에베레스트를 오르기로 했다.

다행히 로체는 고미영과 함께하는 김재수 대장팀, 경기연맹팀도 같이 가기로 했다.

전력이 약한 우리에게 참으로 잘 된 결정이다.

이제 등반할 일만 남았다

고기를 내어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만찬을 즐긴다.

막바지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가장 위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잘 되겠지! 맘속으로 연신 주문을 외우며 달밤에 제단을 찾아가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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