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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Nov 19. 2018

칼스텐츠(2)
강인한 사람들과 함께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11월 13일


새벽.

제일 먼저 자릴 박차고 나와 장엄한 일출 영상을 찍었다.

아침 생리현상 해결을 위해 숲으로 들어갔더니 이곳저곳 온통 돼지똥이 고밀도 지뢰밭이다.

이곳 주민들은 루마(움막)라 부르는 움막에서 사람과 돼지, 개가 같이 모닥불을 쬐며 생활한다.


늦은 아침 현지 포터들이 시차를 두고 속속 도착한다.

서로 떠들다 폭력사태 직전까지 갔던 아찔한 상황. 인도네시아 가이드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장장 세 시간의 협상이 끝났다. 이들이 우리와 같이 갈 포터다.

내 카고도 무사히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원정 첫날부터 짜릿한 신고식이다.


카고 백을 열어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 약간의 간식을 먹으니 기운백배, 정신을 차려본다.

오후에 아침겸 점심을 먹고 런치박스에 점심을 담고선 본격적인 정글 카라반을 시작한다.


마지막 원주민마을을 출발해 고구마밭을 경계를 지나니 바로 정글이다.

비가 자주 와서 길은 모조리 수렁이됐다.

아니 늪이라고 해야겠다.

발이 푹푹 빠지는데 징그럽다.

그런데 이곳 원주민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닌다.

가시밭길, 돌길, 늪길, 추운길, 더운길 등등 거리낌 없다.

이들이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포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태초의 우리가 걷던 모습이 이랬을터.

정글에는 형형색색 꽃들이 물결을 이룬다.

나는 카라반 후미를 따라가며 캠코더와 카메라로 정글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배터리 여분이 없어서 사용량을 조절해야지만, 안 찍고 지나칠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된다.


오늘 만난 프랑스 산악인 프랑수아와 후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보니 빨리 친해졌다.

프랑수와도 나처럼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없다.

  

길은 있지만 산사태로 끊긴 길이 많아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높이 오를수록 추락 위험도 높아진다.

아찔하다.
발 아래 까마득한 저 밑에서 우렁찬 격류 소리가 올라온다.

좁은길 옆으로 시선을 한참 내려가야 보이는 계곡이 무시무시하다.


포터들을 지나칠 때면 원주민 특유의 냄새와 이들이 피워대는 엄청난 담배 때문에 어질어질하다.

이들과 빨리 친해져야 하는데 기본적인 문화도 많이 달라 힘들것 같다.

그래도 현지 말을 배우며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움막은 루마, 돼지는 바비, 개는 안틴, 해는 마타리, 나무는 하우, 구름은 항잇, 물은 아이르... 생소하지만 재미있다.

안녕하세요 노라,  잘가요는 라라고 한다.

'라'에 인사의 의미가 있나보다.

또 의자는 망구, 배낭은 다스, 고구마는 우비, 발은 가끼.

신체 표현은 손은 당안, 빵은 리다, 코는 이둥, 입은 모눗, 눈은 마다, 귀는 델링아라고 한다.

그리고 콧물은 잉구스라고.

길을 만들며 진격한다.

수앙가마(Suangama) 마을에서 출발 전 포터 짐 문제와 원주민간 갈등으로 몇 시간을 허비했고, 이 때문에 제1캠프 도착이 많이 늦어졌다.

게다가 운행 도중 몇 차례 소나기를 만나 몸과 장비는 다 젖으며 극심한 허기와 갈증을 견뎌야 했다.

첫날 톡톡한 신고식을 치렀다.

진 빠진 힘든 하루였다.

  

텐트를 치고 쿡에게 따뜻한 물을 달라고 해 라면스프를 풀었다.

벌컥벌컥 마시니 목마름과 배고픔이 일단 해결된다.

칼칼하고 따뜻한 느낌이 몸 여기저기로 퍼져 좋았다.

이어 카누커피를 한 잔 들이켰더니 좁은 텐트 안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곳으로 변했다.

바깥세상에서 하찮은 것이 여기서는 이토록 무한행복을 주는구나.


오늘 정글에서 꽃물결을 찍다가 깜박 캠코더 전원을 켜뒀나보다.

지금 보니 베터리바가 왕창 줄어있다.

보조 배터리도 없으니 최대한 아껴써야한다.


머리를 감을까 말까 고민하다 비를 많이 맞아서 견디지 못할 것 같아 감아버렸다.

 

밤에도 비가 텐트를 계속 두드린다.

열대우림.

짙은 어둠에 억수 같은 퍼붇는 비.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 산거머리는 없는 것.

히말라야 초오유 등반 때 산거미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하다.

산거머리는 달라붙은 것도 모르게 내 피를 쪽쪽 빨아먹는다.     



11월 15일

제2캠프 ~ 제3캠프


밤새 비를 뒤로하고 아침 하늘이 무척 맑다.

이곳 기상은 대게 오전은 맑고 상쾌하다.

오늘 운행할 길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저 대열을 놓치지 않고 따르며 점심 도시락을 먹고 걷다가 짐을 풀고 불을 지피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지도가 없는 곳이기에 정보도 없다.

어디쯤 길이 끊기는지, 계곡을 만나는지, 늪지대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다.  

안내책자도 없다.

아마도 인근에 중요 광산이 있어서 보안때문에 그럴지도.

어쨋건 여기선 오로지 직접 경험한 것으로만 구별하고 판단한다.

  

운행 중 엔다시가라는 커다란 늪지에서 오래 머물렀다.

만발한 야생화 때문이다.

처음 보는 원색의 꽃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촬영 때문에 친해진 프랑수아와 대열에서 한참 처지다가 뛰어가 합류하길 반복했다.

힘들다, 축축하다, 배고프다, 춥다, 어지럽다, 외롭다, 그래도 좋다,  목표에 가까이 갈수있으니.


12km 정도 걸어서 막영지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여장을 풀며 또 하루를 마감한다.

식사는 쿡 텐트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고, 점심은 아침에 먹다 남은 음식을 스스로 런치박스에 채워야 한다.

메뉴는 주로 스파게티, 닭볶음, 과자, 홍차, 커피, 계란프라이.

  

오늘은 무척 질척이고 빠지는 구간이 많아 힘들었다.

정글이 아닌 징글이었다.


고도가 점차 오르면서 고소 초기증세도 찾아왔다.

나는 고소증세가 남들보다 빨리 오는 편이다.

이번에는 아마 고도 2,500~3,000m 사이에 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도 큰 걱정은 없다.

일찍 온 만큼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원시림을 통과하며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 한걸음의 발자국이 빨리 치유되길 기원했다.

또 내 발걸음이 다른 이들을 불러들이지 않길, 그래서 최대한 잘 보존 되길.  

앉거나 누워서 쉴수 있는 환경이 극히 제한적인 밀림.

 

11월 16일

제3캠프 ~ 제4캠프


오늘 아침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맑고 푸르다.

어제 찾아온 고소증세도 많이 누그러든 것 같다.

이젠 오를 만큼 올라서 키 작은 관목지대가 보인다.

아직 칼스텐츠를 직접 볼순 없지만 전위봉 수만트리(4,870 m)와 뉴질랜드패스 고봉을 만날 수 있다.

 

고도 3,450m 지점을 지날쯤 엄청 큰 홀을 봤다.

옛날 옛적 이곳에서 큰 지각변동이 있었나보다.


오늘도 종일 진흙탕과 씨름했다.
불쑥불쑥 쏟아지는 소나기도 매일 반복된다.

새삼 마른땅이 그립다.

삶이 다 그런거지!  과연 그럴까?


11월 17일

제4캠프 ~ 제5캠프


아침에 본 칼스텐츠 전위봉이 수문장처럼 웅장한 모습이다.

햇살과 운해가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놓치기 아쉬워 그림을 그렸다.


목표는 푼칵자야로.


오늘은 광활한 분지를 지나간다.

마치 킬리만자로의 분화구 웅고롱고로(Ngorongoro)처럼 규모나 지형 모두 유사하다. 그러나 산행은 여기가 훨씬 더 힘들다.

오르락 내리락 반복되는 길과 끝없는 습지가 무척 힘들다.

  

오후에 정글을 벗어나 관목류와 듬성듬성 자라는 초본류를 만났다.

그렇다고 분지의 늪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회사 필력 좋은 실장님의 홍보물.


11월 18일

제5캠프 ~ 베이스캠프  


오늘은 학수고대하던 베이스캠프에 입성하는 날이다.

그리고 7-summit 종착지 칼스텐츠를 볼 수 있는 날이다.

하지만 여정은 가혹했다.

오후 내내 강한 바람과 비, 여기에 사라지지 않는 고소증, 그리고 절벽을 낀 아슬아슬한 등반 등등 모두가 유쾌하지 않았다.

하늘과 칼스텐츠가 나의 방문을 힘들게 하는 느낌이었다.


급기야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력한 스콜이 길을 막았다.

순식간에 급류가 생기고 어두워진 하늘에서 뇌우가 번쩍였다.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엄청난 울림이 왔다.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

마침 절벽 아래 약간 패인 곳에서 간신히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심각하게 눅눅했다.


이런 악천후에도 아랑곳 않고 잘 견디는 포터들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곳 바위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현지 포터들은 대부분 신발이 없다.

그래서 발바닥이 코끼리발처럼 두툼하다.

두터운 각질이 발을 보호하는지, 지금까지 밀림과 자갈투성이 길에서 안정된 걸음으로 잘만 다닌다.

카고백 위에 아이까지 둘러멘 엄마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포터들이다.


이제 막바지 큰 고개를 넘어 급경사로 내려서면 베이스캠프다.

포터와 우리는 특별한 룰이 없이 매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오늘은 완전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더군다나 고도가 높아지면서 온도가 뚝 떨어져 으실으실거린다.

내 머릿속은 한시라도 빨리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따뜻한 침낭 속으로 들어가려는 생각뿐이다.


이런 내모습이 처량해 보였을까?


엄마를 따라온 소녀가 손짓으로 조금 더 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 아이 또한 뒤집어쓴 포대기가 축축할텐데 거뜬한가보다.

맨발의 현지인 소녀


베이스캠프까지 온 포터들은 이제 모두 내려간다.

며칠 함께하며 정들었는데, 아쉬운 이별이다.


아까 그 아이도 돌아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 준다.

짧은 순간 그 꼬마의 선한 눈빛을 보며 가슴이 허전하다.

순간 나약한 산악인의 속내가 보여질까 괜히 움츠려들었다.

이날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말로만 듣던 대규모 광산이 칼스텐츠 산군에 가려진체 그 일부를 드러낸다.  

베이스캠프 텐트를 구축했다.

땀과 빗물로 뒤범벅된 머리를 감고 눅눅한 침낭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하루의 모든 피로가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딱 세 가지.

만년설, 거대한 바위산, 무수한 별.

밤하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본다.


마음이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오늘밤은 깊고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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