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바이브, 홍대 입구
백수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생긴 여러 가지 변화 중 하나는, ‘동네’의 반경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을 할 때도 동네를 산책하는 일은 늘 했지만, 그때는 동네라고 할 수 있는 범위가 꽤 좁았던 것 같다. 짧은 시간, 그러니까 10분 안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지만 주로 다녔기 때문인가 보다. 지금은 좀 더 멀리, 잠시 버스를 타야 하는 곳까지도 꽤 친근하게 느껴진다.
동네의 범위가 넓어진 건 동네에 익숙해진 정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집에서 걸어서 30분 남짓 거리의 홍대입구는 왠지 가까운 동네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나 홍대입구 쪽에 산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어쩌면 홍대 입구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갖고 있던 심리적 거리감이, 이제 좀 좁혀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저녁 전철 출구에서 나오다 공포를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람들, 여기나 저기나 다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들로 그득한 곳, 멋없이 북적거리기만 하는 곳. 이런 것들이 홍대입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틀린 건 아니지만, 이 장소의 매력은 못 알아봤던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연남동, 연희동, 망원동 산책은 즐기지만 내게 홍대입구는 지하철을 타기 위한 곳 정도였다.
홍대입구라고 하면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같은 지하철역인데도 양 끝 입구 사이의 거리가 도보 10분은 된다. 주로 가는 곳은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지나치는 8, 9번 출구와 공항철도 쪽 입구 부근이다. 별 것 없이 번잡하기만 한 것 같지만, 이 동네는 여행자 바이브가 넘치기 때문에 늘 설레는 곳이다. 동네라면 침착하게 조용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고즈넉함도 좋지만, 설렘이 느껴지는 특별한 것도 좋다. 이 동네가 그렇다. 워낙 젊음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공항철도역이 있어 인천공항까지 쉽게 갈 수 있어 호텔이 여러 개 있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많아서 그 자체로 여행자 바이브를 만든다. 코로나 시국이 끝났음을 이 동네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홍대입구 대로변에 있는 한 호텔 건물 카페는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가는 게 영 마땅치 않았는데 다이닝 카페라 스파게티와 주류까지 주문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공간이 널찍하고 붐비지 않는다. 이곳의 매력은 호텔 투숙객이 많아 여행지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 세계 여러 곳에서 온 걸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 전 가벼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도 여행지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 느낌을 즐기러 자주 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클럽 FF,문 닫은있을 테지.생각해보니 홍대입구는 경기도에 살면서도 주 1회 이상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지만 인디밴드들의 클럽 공연을 즐기러 왔었다. 빵, 클럽FF, 롤링홀...... 자연스럽게 잊고 사는 동안, 사라진 밴드들도 있고 문닫은 클럽들도 있을테지. 시간의 여유가 공간의 매력과 추억을 찾게 해 준 셈이다.
잠깐 전철을 타기 위해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머무는 곳이 되면 “우리 동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