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Jul 24. 2024

식물의 속도

반려 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놀라게 되는 때는,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친구네 아이를 오래간만에 보았을 때, 군에서 제대했다는 사람을 볼 때. 세월의 빠른 속도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집에 있는 식물을 바라보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화분에 심긴 식물은 정물화의 대상으로 자주 보게 되는 만큼, 한 자리에 그대로 있어 평소엔 멈춰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일까.       


좁은 집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꽤 많은 식물과 함께 살고 있다. 사실은 볕이 잘 드는 집이 아니라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한정적이기도 하고, 적잖은 식물들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물 주는 걸 소홀히 해서 말라죽은 적은 없고, 대신 내 딴에는 열심히 돌본다며 물을 자주 주어 과습으로 병든 경우가 많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주는 게 문제다.

       

이 집에 이사오던 때, 친구들이 무슨 선물을 원하냐고 물어서 나는 큰 화분에 담긴 식물을 사달라고 했다. 대박나라는 문구를 리본에 매달고 온 여인초는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곳에서 우리 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든 잎을 잘라주면 옆에서 새 잎이 나기를 여러 번, 4년 동안 잘 자라고 있는 이 여인초는 하나를 잘라주면 어김없이 다른 좋은 하나가 생긴다는 걸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인연을 다한 것은 미련 없이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도 있다.

     

집 가까이에 화원이 없어서 당근 거래로 식물을 몇 번 사들인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잘 자란 몬스테라는 이제 여러 개의 화분으로 옮겨 자라고 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성장속도가 빨라서 가끔씩 깜짝 놀라게 한다. 내 키보다 더 높이 수태봉을 휘감고 자라난 모습이 장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나 자랐나를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동안 뿌리부터 잎까지 온몸의 힘을 다해 흙 속의 영양분을 끌어올린 결과려니 싶다.       


가까이에서 자주 보면 오히려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커버린 것에 놀라게 된다. 그저 서 있는 자리에서 뿌리를 움직이지 않은 채 꾸준히 자라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믿을만한 존재다. 매일 알아차리게 요란하진 않지만,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거리의 나무들도 그렇듯이. 사람도 그렇다. 존재감이 미미한 사람들은 주변의 주목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지만, 꾸준히 그 자리에 있다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 입장, 전역날을 기다리는 군인 본인의 입장에서 매일의 시간은 그렇게 빨리 가지 않는다. 숙련 역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지루함을 견디면서 성과를 단번에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조용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매일 눈금을 확인하는 대신, 어느 날 갑자기 원래보다 몇 배로 자라 있음을 어느 눈 밝은 사람이 알아채게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못 알아채도 괜찮고.  


   


이전 09화 시간의 소비: 경험에 투자한다는 것의 딜레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