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Aug 11. 2024

불평등한 시간, 예외적인 시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짐이 얼마 안 되니 완전 포장 이사 대신 반 포장(떠나올 땐 업체가, 옮기고 나서는 내가 정리하는 방식)을 택했다가 막상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짐을 정리할 때가 되니 넋이 나갔더랬다. 이사할 때는 몸고생 하지 말고 어지간하면 돈을 쓰라는 주변의 말이 정말 맞았다. 어떤 일들은 오래전엔 스스로 했던 것들이지만 점점 남에게 맡기는 일이 되고 있다. 돈을 지불해서라도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이사 정도야 내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는 일회성의 비용 지불이지만, 일상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능력의 유무는 좀 더 무거운 이야기가 된다. 알바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학생과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학생, 살림은 돈으로 처리해서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과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는 사람, 이렇게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보면 결코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몇 년 후 누가 더 좋은 성적과 커리어의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짧게는 고된 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 길게는 직업적 성취를 좀 더 쉽게 가능케 하는 여유, 이런 것들이 돈의 여유가 만드는 시간의 여유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옛말은 시간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민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 더 정확할 지도.      


예외적인 시간을 사는 사람들 : 야간, 주말 노동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꼭두새벽에 버스를 탔을 때, 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일터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밥벌이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모두가 직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아침과 대낮에도 거리에 사람이 꽤 많다는 건, 내가 나인 투 식스 직장인이 아닐 때 더 실감하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 휴가를 냈거나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사람, 아니면 일하는 시간이 좀 다른 사람일 것이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8시간 근무와 1시간의 점심시간을 포함하는 이 시간대에 일터가 아닌 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은 사실 규격을 벗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은 규격에 맞는 사람들의 삶을 많은 부분 지탱하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야간 근무자들, 주말 근무자들, 일의 시작과 끝 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프리랜서들이 많이 있고, 흔한 회사 사무실이 아닌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시계에 맞게 일하는 것이 인간의 생체리듬에도 자연스러울테고 다수의 사람들이 행하는 시간표 안에서 사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러나 이런 시간표를 벗어나 예외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밤새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대기하고 건물과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주말에 여가 시설에서 일하는 스텝도 필요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바로 출동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자연의 시간에 맞추지 않아 생기는 몸의 문제나, 다수의 사이클과 달라 사회적 관계에 생기는 불편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한 가급적 밤새워 일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예외적인 경우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가 할 일이다.      

새벽배송을 위해 일하다 숨을 거둔 노동자의 소식을 듣게 된다. 물론 위험한 노동을 멈추어야 한다는 이유가 크지만, 거기에 더해서 나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어지간하면 주문을 참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집에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쓰러지는 사람이 생긴다면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서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에 머무는 시간: 시간 여유가 찾아준 공간의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