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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Jun 21. 2024

여행하는 시간 : 떠난다고 해결될 일은 없지만...

J형 인간의 여행 원칙은 오히려 ‘융통성’     


최근의 여행지는 후쿠오카였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거나 머릿속 환기가 절실하다 싶을 때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여행이다.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는 두어야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즐길 수 있으니까. 비행기 공포가 더 심해지고 있으니 가까웠으면 좋겠고, 날씨도 너무 덥지 않으면 좋겠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면 더 좋겠다는 조건에 후쿠오카가 맞아떨어졌다. 일주일 전에 결정하고 빠르게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다. 이 두 가지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 같다.      


여행 짐 챙기기에는 늘 많은 시간이 든다.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작성해도 어떤 물건을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여행 가방을 쌀 때마다 일상에 어떤 물건이 어떤 쓰임새를 갖고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곁에 없으면 안 되는 물건, 사소해 보이지만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데 품고 있던 물건... 꼭 필요하지만 운이 좋으면 안 쓸 수도 있는 물건, 이를테면 구급약 같은 것도 있고, 무게가 덜 나가는 것으로 대체 가능한 물건도 있고, 필수적이지 않지만 기분은 좋게 해주는 것도 있다. 짐 싸기를 통해 일상을 돌아본다. 그렇지만 일단 짐을 최대한 가볍게 싸고 나서 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은 “걱정 마. 여권과 전화기만 있으면 된다.”     


딱히 여행 갈증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여행 경력이 쌓이고 보니, 여행 전에 어느 정도까지 다른 사람들의 여행 정보와 후기를 참고할 것인지도 감이 잡히고 나만의 여행 습관과 원칙도 생겼다. 공항과 여행지 교통에 관한 정보는 최근에 업데이트된 것으로 꽤 자세한 것까지 챙겨야 하고, 나머지는 내 방식대로 하면 된다. 특히 쇼핑은 특히 취향을 타는 것이고 평소 내 취향을 알면 굳이 시간 낭비를 안 할 수 있다. 대략의 필수 정보만 파악해서 윤곽을 잡고 나면, 그때부터 내 취향껏 동선을 짜면 된다. 과거엔 자세하게 여행 일정을 계획했던 나, 파워 J형은 이제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융통성 있는 계획을 짜고 현지에서 바꾼다’는 원칙을 지킨다. 좀 머리를 식히고 많이 걷고, 그렇게 이 도시를 경험해야겠다는 여행의 큰 방향은 잡았다.      


설레는 공항, 행운의 날씨     


꼭두새벽에 일어나 공항버스 첫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침 8시 비행기를 위해 6시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게 이번 여행의 최대 난제였는데, 이제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공항은 설레는 공간이다. 지인 중에 여행을 가지 않는데도 가끔 공항에서 두어 시간 머물다 온다는 이가 있었다.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첫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갔다. 예보대로 도착지 공항에 비가 내렸다. 그렇지만 내가 우산을 써야 했던 시간은 5분 남짓, 짧은 비였다. 결국 비 오는 날씨, 흐린 날씨, 그리고 반짝반짝 화창한 날씨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관광객으로 지내는 즐거움     


루프탑 버스는 여기 와서도 타게 되어 어느새 내 여행의 원칙처럼 되었다.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다. 심지어 국내 도시에서도 시도했던 루프탑 버스(또는 시티버스) 타기는 어지간하면 여행지에서 해보는 습관이다. 한 바퀴 돌아보고 그다음에 콕콕 집어 가볼 곳을 정할 수도 있고, 하마터면 있는지도 모르고 갈 뻔했던 이곳저곳을 눈에 담을 수 있으니까. ‘현지인처럼!’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 어차피 여행자고 관광객이다.         


둘째 날은 정갈한 일식 조식을 시작으로, 오호리 공원에 다녀왔다. 공원 안에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이 있어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오래전에는 ‘나는 뮤지엄 타입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전시 관람이 취미가 된 지금은 여행의 필수 코스로 미술관에 간다. 찜해 놓았던 식당에서 간단하면서도 맛난 점심을 먹고, 버터 풍미 가득한 소금빵을 커피와 함께 먹고, 꼬치구이와 하이볼로 저녁을 보내고, 밤에는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밤에는 숙소에서 현지 맥주를 한 잔 하고, 현지 음악을 들으면서 일기도 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는 안전함과 즐김 사이를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특히 혼자서는. 너무 늦게 밤에 거리에 나가지 않을 것, 전화기와 여권은 이동할 때마다 제자리에 있는지 챙길 것, 주량을 넘기지 말 것.       


후쿠오카의 관광명소나 번화가에는 체감상 3분의 1은 한국인들인 것 같았다.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하니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데, 다들 관계가 참 좋아 보여서 나까지 행복했다.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온 친구들, 여행지에서 최대한 멋을 부려 연예인 못지않은 사람들, 다정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신나 보이는 가족들... 다 좋아 보였다. 혼자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눈에 띠지는 않지만 아마 정말 행복했을 테고, 나처럼.       


짐을 풀고 사진을 정리할 때까지 여행은 계속     


여행을 통해 일상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없어질 리도, 갖고 있던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다. 그렇지만 여행 기간만큼은 그저 좋은 시간으로 채우는 것! 서울에서의 일상, 특히 일에 관란 것들은 말끔히 잊을수록 좋다. 걱정은 돌아와서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을 온전히 즐기는 게 남는 거다. 짧은 여행, 애초의 목표도 달성했고, 예산 범위를 넘지 않게 알뜰한 지출에도 성공했다. 한 개도 변하지 않은 현실이라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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