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놀라게 되는 때는,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친구네 아이를 오래간만에 보았을 때, 군에서 제대했다는 사람을 볼 때. 세월의 빠른 속도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집에 있는 식물을 바라보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화분에 심긴 식물은 정물화의 대상으로 자주 보게 되는 만큼, 한 자리에 그대로 있어 평소엔 멈춰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일까.
좁은 집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꽤 많은 식물과 함께 살고 있다. 사실은 볕이 잘 드는 집이 아니라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한정적이기도 하고, 적잖은 식물들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물 주는 걸 소홀히 해서 말라죽은 적은 없고, 대신 내 딴에는 열심히 돌본다며 물을 자주 주어 과습으로 병든 경우가 많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주는 게 문제다.
이 집에 이사오던 때, 친구들이 무슨 선물을 원하냐고 물어서 나는 큰 화분에 담긴 식물을 사달라고 했다. 대박나라는 문구를 리본에 매달고 온 여인초는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곳에서 우리 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든 잎을 잘라주면 옆에서 새 잎이 나기를 여러 번, 4년 동안 잘 자라고 있는 이 여인초는 하나를 잘라주면 어김없이 다른 좋은 하나가 생긴다는 걸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인연을 다한 것은 미련 없이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도 있다.
집 가까이에 화원이 없어서 당근 거래로 식물을 몇 번 사들인 적이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잘 자란 몬스테라는 이제 여러 개의 화분으로 옮겨 자라고 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성장속도가 빨라서 가끔씩 깜짝 놀라게 한다. 내 키보다 더 높이 수태봉을 휘감고 자라난 모습이 장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나 자랐나를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동안 뿌리부터 잎까지 온몸의 힘을 다해 흙 속의 영양분을 끌어올린 결과려니 싶다.
가까이에서 자주 보면 오히려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서 바라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커버린 것에 놀라게 된다. 그저 서 있는 자리에서 뿌리를 움직이지 않은 채 꾸준히 자라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믿을만한 존재다. 매일 알아차리게 요란하진 않지만, 계절의 변화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거리의 나무들도 그렇듯이. 사람도 그렇다. 존재감이 미미한 사람들은 주변의 주목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지만, 꾸준히 그 자리에 있다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 입장, 전역날을 기다리는 군인 본인의 입장에서 매일의 시간은 그렇게 빨리 가지 않는다. 숙련 역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지루함을 견디면서 성과를 단번에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조용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매일 눈금을 확인하는 대신, 어느 날 갑자기 원래보다 몇 배로 자라 있음을 어느 눈 밝은 사람이 알아채게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못 알아채도 괜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