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건 균형의 문제다. 혼자 있는 시간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 쉬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 참견하기와 내버려 두기.
홀로 즐기는 가장 나다운 시간
식당에서 고기 먹기, 여행하기...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난이도를 매기고 어디까지 혼자 해봤나 테스트하기는 잊을라치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주제다. 리스트를 보면 나로서는 참 이런 일도 혼자 못하나 싶은 것들이 많지만, 실제로 혼자서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해서 혼자의 즐거움을 못 느껴본 때문이기도 하겠고, 남들이 보는 시선, 그러니까 '친구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두려워서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요즘엔 '즐겁지 않은 사람과 같이 있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친구 많은 인싸를 동경하는 데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단지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혼자 지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데는, 아마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남들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적어서인 것 같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버거운 건, 주로 의무와 책임을 가진 관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터에서 혹은 어떤 조직에서 개인이 해야 할 의무와 모두가 지켜야 할 규율이 많다 보니, 그저 즐거움 위주의 관계가 아니라 힘들어지기 쉬울 수밖에.
규율의 적용 대신 내 마음을 기준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혼자 있는 시간의 장점이다. 오랜 시간 남이 짜준 시간표에 길들여져 정작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감당 못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 적응과 노력을 거치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얻은 교훈도, 혼자 곱씹을 시간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고,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 나의 몸은 어떤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지, 나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카페에서 노트에 메모를 끄적이면서, 또는 산책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아니면 집안 한 구석 명상하기 좋은 자리를 만들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아무리 바빠도 만들어내야 할 시간이다.
교류의 시간
미술 전시회에 가서 해설을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작가가 누구와 교류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작가 000은 청년 시절 000 지역에서 동료작가 000와 잦은 만남을 가졌으며 소설가 000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식의 이야기다. 그 시기 작품에 크게 영향을 미친 건 그런 만남과 소통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림에는 작가가 살았던 지역의 영향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의 영향이란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거기서 만났던 사람으로부터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화가의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작업 결과는 그런 영향을 주고받아 탄생한 걸 거다.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지에서 참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하느냐인 것 같다. 주변의 영향에서 벗어나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교류와 접촉이 주는 풍성함도 있고,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서 시간의 밀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에게서 받는 실질적인 조언도 좋고, 생소한 직업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얻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좋고, 오랜 시절 알아온 친구들의 편안함도 좋고, 새로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알아가는 재미도 좋다. 단, 공유할 것이 무언가 하나는 있어야 하고, 사람 이외의 목적이 크면 안 된다. 주고받을 건 그저 재미와 보살핌.
동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 수 있다는 예감을 하면서, 나는 동네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소모임을 찾아 나섰다. 맛있는 식당 정보, 구청이나 도서관에 생기는 프로그램, 시시콜콜한 정보와 근황 나눔이 가능한 동네 사람들의 모임. 혼자 살수록 동네 친구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 많아지는데, 아이를 키우는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동네 친구를 만들기가 더 어려운 건 좀 안타깝다. 이제 또, 나는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는 어떤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