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나는 너의 뮤즈가 아니다
기말고사 기간, 우리는 자석의 다른 극처럼 붙어 다녔다.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하고, 학생회실에서 쪽잠을 자며 남은 일을 처리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서로에게 각자의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발설해서는 안 될 둘만의 비밀처럼 우리를 더 끈끈하게 묶었다.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 그가 짚어주는 중요한 부분은 교수님들이 강조하신 것과 거의 일치했고, 복잡한 이론을 설명하는 그의 언어는 명쾌하고 쉬웠다. 그는 내가 가진 배움의 속도와 양을 보며 감탄했다.
"벌써 다했어? 공부에 소질이 있구나. 부럽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그의 세계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그는 내가 가진 그 '날 것'의 속도를 경이롭게 바라봤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갔다.
시험이 끝나면 방학이었다. 그 사실이 기쁘지 않았다. 방학은 그를 볼 '명분'이 사라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학생회 일을 핑계로 방학에도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 다행히 그도 학교에 있는 날이 많았다. 도서관 구석자리에서,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곧 졸업인데, 취업과 영화감독의 꿈 사이에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냥 직장에 다니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맞는 거 아닐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선배는 영화감독이 되어야 해요. 그게 선배의 운명이에요. 선배가 아니면 누가 해요?"
그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연극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열정과 실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가 영화감독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하늘이 내려준 재능의 낭비라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세계였고, 나 또한 그 세계에서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바람이었다.
며칠 뒤, 그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다.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내 발에는 아직 '족쇄'가 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자취방에서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파티를 했다. 외로운 솔로들은 자기 방에 모이라는 그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큼지막한 케이크 하나를 사 들고, 그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모두들 날 보며 의아해했지만, 별 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방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었고, 부루스타 옆에 돼지고기 앞다리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앞다리살이 가장 싼 고기지만, 맛은 끝내준다며 너스레를 떨며 고기를 직접 구웠다. 운용 선배는 삼겹살을 못 먹어서 인지 입이 삐죽하게 나왔지만, 그가 싸준 쌈을 한 번 먹고 나더니 이제는 앞다리살 홍보대사가 된 것처럼 앞다리살의 참맛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가 나에게도 한쌈을 싸서 먹여 주었다. 따뜻하고 충만한 맛. 그건 지금도 잊지 못할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 나는 모두가 말리는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그의 공간을 내 손으로 정돈하는 일이라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설거지를 한 뒤, 욕실과 방 안을 빠르게 훑었다. 전 여자친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그가 이렇게 빠르고 치밀하게 전 여자친구의 흔적을 지웠다고? 그에게 살짝 '나쁜 남자'의 향기가 났지만, 그것보다 더 큰 안도감이 밀려와 안심이 되었다. 이곳은 이제 온전히 그의 공간이었고, 곧 나의 공간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취방을 나서는 순간, 곧 전남자친구가 될 그가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내 집 앞을 불쑥 찾아왔고, 술에 취해 울며 전화도 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그의 목소리는 이제 사랑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게 들렸다. 밤마다 들리는 모든 오토바이 소리가 내 신경을 쇠꼬챙이처럼 긁어댔다.
혼자서 감당하기 벅찰 때마다 학생회장 선배가 떠올랐다.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징어 짬뽕라면과 소주 몇 병을 사들고 그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이번엔 단 둘이었다.
"선배님. 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싶어요."
사실 이미 마음은 굳혔다. 나는 그에게서 허락이 아닌 확신을 얻고 싶었다. 그는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그가 나를 원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술기운이 올랐다. 나는 조금 더 대담해졌다.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그럼 오빠라 부를게요....... 오빠... 어깨 좀 빌려도 돼...요?"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댔다. '역겨운 맛'이 아닌,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의 살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내 마지막 '족쇄'를 끊어내기로 단단히 맘먹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엔 피하지 않고 받았다. 만나자고 했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지만, 이번엔 그의 허리를 붙잡지 않았다. 차가운 밤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시원했다.
"헤어지자."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뜻밖에도 그는 순순했다. 내가 이별을 고할 줄 알았다며, 차라리 시원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딱 한 달만 더 생각해 달라'며 사정했다. 그의 예상 치 못한 매너에 나는 당황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깔끔하게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한 달'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 바치는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 '예의'는 재앙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그가 나를 외면했다. 늘 함께 하던 학생회 일을 운용 선배에게 맡겼고,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날, 운용 선배가 나에게 무언가 힌트를 주는 듯한 어감으로 말했다. 그가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아팠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분명 나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내가 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해서, 그 '한 달'이라는 유예기간 때문에, 그가 아픈 것이었다. 내 '예의'라는 비겁한 변명이 그를 병들게 했다. 죄책감이 몰려왔고, 그 때문에 나는 그보다 더 아팠다.
하루, 하루가 지났다. 내일이면 그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가자 나는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운용 선배에게 부탁해 그가 자취방에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 나는 당장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아픈 사람한테는 무슨 죽 끓여줘야 해? 소고기 야채죽? 그거 어떻게 끓여?"
아마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딸의 질문에 당황했을 것이다. 엄마도 알았을 거다. 내 딸이 지금 진짜 사랑을 시작하려는 참임을. 장을 봐오고, 죽을 정성껏 끓였다. 그의 자취방에 전자레인지는 없고, 대신 냄비가 있으니 그걸로 뎁히면 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냉장고를 뒤져 엄마 몰래 밑반찬과 과일 몇 개도 챙겼다.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 나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아주 오랫동안 정성껏, 온몸을 정갈하게 씻었다. 화장도 그 어느 때보다 공들여했다. 혹시 몰라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흰색 속옷 세트를 찾아 입었다. 한 번도 안 입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혹은 그가,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집 앞, 손거울을 꺼내어 얼굴을 확인했다. 깨끗이 지운 매니큐어와 손톱도 확인했다. 문에 귀를 대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 손에 들린, 그를 살릴 '죽'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문을 힘껏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초췌한 그가 보였다. 그를 보자 안쓰러움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나 때문에 아픈 그와, 그런 그를 이 지경까지 내버려 둔 우유부단한 나 자신에 대한 화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만류하던 그를 밀치고 그의 세계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