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는 너의 뮤즈가 아니다
그가 달라졌다. 내가 옆에서 '아로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도, 그는 옅은 미소마저 이내 지우며 정색하는 모습이었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라 당황스러웠고, 곧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그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그의 세계를 존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올 불길한 소식이 우리의 완벽한 행복에 해가 될까 봐, 지독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를.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절대 변함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어느 날, 우리가 자주 가던 강둑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뇌경색이래. 지금은… 말도 못 하시고, 그냥 누워만 계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무거운 말을 덤덤히 뱉어내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슬퍼 보여, 나는 이내 눈물이 차올랐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그를 품에 안았다. 그의 깊은 심호흡과 나의 '괜찮아'라는 말이 강물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가 자취방에서 이사를 가던 날이었다. 보증금은 아버지의 병원비에 보태야 했다. 내가 가져다 놓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스며있던 곳, 우리만의 사랑 공식이 만들어졌던 소중한 세계가 사라지는 날이었다.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운용 선배도 말없이 우리를 도왔다.
우리는 함께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이었다. 내가 돈을 좀 더 보태 창문이 있고 넓은 방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 방으로 충분하다고 답했다. 마음이 아팠고, 그런 그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자취방이 고시원으로 바뀐 현실 따위가 우리 사랑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오빠. 나는 오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나는 그의 손을 잡아 내 볼에 가져다 댔고, 그의 품에 폭 안겼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얼굴을 조용히 쓰다듬으며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의 해결책이 처음으로 거절당한 순간이었다. 그는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야 한다고 둘러댔지만, 나는 그 초라한 공간에서 나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미안해하는 그의 배려로 읽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나의 진심을 헤아려주지 못한 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 그가 말을 이어갔다.
"나 영화 현장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어. 하필 이 타이밍에."
타이밍은 잔인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제의였다. 그가 존경하던 감독님이 그를 지목해 제안한 것이었다. 지금은 꿈이 아니라 돈이 필요한 때였다. 급여가 적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현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삶의 연장선이었다. 이 일은 그에게 필수적임에 틀림없었다. 다른 때였다면, 그의 성공에 기뻐 날뛰었던 나처럼,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를 안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병원비라는 차가운 현실과 그의 빛나는 꿈 사이에서, 나는 그와 함께 기뻐해 줄 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에게 오빠가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 오빠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마음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했지만, 아버지의 병원비라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복잡한 생각으로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엄마마저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 정도로 내 불안은 커져갔다. 나는 그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 그의 꿈과 현실, 두 가지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복잡하고 불안한 생각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행동뿐이었다. 다음날 윤교수님의 방을 찾아갔고 모든 것을 말씀드렸다.
"너희 결혼할 생각도 있는 거지?"
나는 교수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결혼. 막연하게 상상했던 단어가 현실이 되자, 나는 그와의 행복한 결혼생활, 사랑의 완성을 반드시 이루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단호하게 '네'라고 답했다. 윤교수님은 그 답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에게 먼저 안정적인 취업을 준비하라고 조언하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답이었다. 그의 꿈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기꺼이 현실이 되기로 다짐했다. 교수님은 전화기를 들고 그에게 만나러 와달라고 말했다.
"내가 잘 말해볼게. 네 마음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안정적인 직업이 우선인 것 같아. 내가 잘 타일러 볼게."
교수님의 마지막 말, '내가 잘 타일러 볼게'라는 말이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그의 꿈을 꺾으려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현실이 되어 그의 꿈을 지키려 한 것인데. 교수님이 나의 순수한 헌신을 그에게 현실만을 강요하는 압박으로 오해하게 만들까 봐 미칠 듯이 불안했다. 그가 윤교수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며칠이 흘렀다. 그가 말했다. 영화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고. 그가 교수님의 제안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꿈을 지켜낸 것에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나는 연습하고 다짐한 대로, 그의 용기를 존경하며 난 그의 편이고,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기쁘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꿈을 선택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교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 않았다. 그의 꿈을 지켜달라는 나의 순수한 지지를 모른 채, 교수님의 현실적인 조언을 나의 본심으로 오해하고 나에게 쌀쌀맞게 벽을 치는 것 같아서 섭섭했다. 나는 그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애써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가 영화 일을 하기 시작하고 수개월이 흘렀다. 우리의 만남은 전보다 뜸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는 예전보다 말이 많아졌다. 주로 영화판에서 받았던 칭찬을 나에게 전했다. 평소보다 들뜬 그의 모습에 나는 그것이 남자들의 흔한 허풍이라 생각하고 받아주려 했다. 하지만 매사에 진중하고 침착함을 유지했던 그가, 지금 내게 보여주는 이런 행동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을 낳기에 충분했다. 혹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는 직감이 제발 틀리기만을 바랐다.
영화 일이 계속되면서 그는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일이 힘들기 때문에 오는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골똘히 상념에 빠져있는 그의 모습에는 아버지의 병환에 대한 걱정뿐만이 아닌,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가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보고 싶어 고시원 앞으로 자주 찾아갔지만, 그는 나와 함께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 좁고 어두운 방에 나를 들이는 일이 그에게는 영 마음 내키지 않은 일이라 짐작은 했다. 나는 다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을 몰라줘서 살짝 서운했지만,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을 굳이 내 욕심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어 학원 시간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의 일도 그와의 만남을 소원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스케줄 때문에 우리는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서로의 짬이 맞아서 만나려고 하면 그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만남을 피했고, 나 또한 그런 그가 안쓰러워 그렇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니 겨우 사라진 줄 알았던 불안의 불씨가 다시 지펴지기 시작했다.
나는 행동해야 했다. 오지 말라던 그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그의 고시원으로 찾아갔다. 고시원 그의 책상 위에는 날짜가 지난 연극표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표를 집어 조용히 내 가방에 넣었다. 그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어 밖에 나가자고 했고, 그도 못 이긴 척 따라나섰다. 우리가 좋아했던 순대국밥집으로 들어섰고, 그는 첫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내게 말을 꺼냈다. 그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영화판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