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넝마자루

10화

by 황 영


삼촌은 짐승의 잠에서 깨어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벌떡 일어났다. 초점 없는 눈이 미용실의 낡은 천장을 훑더니, 이내 셔터를 향해 몸을 던졌다.

“가야 해... 형님들이 거기 있어.”


쇠문을 긁는 삼촌의 손톱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마는 맨발로 달려 나가 삼촌의 앞을 몸으로 막아섰고, 나도 삼촌의 허리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삼촌이 절규하며 몸부림칠수록 미용실 안의 공기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삼촌의 어깨를 으스러지도록 누르며 낮게 읊조렸다.


“가더라도 밥 한 끼만 묵고 가라...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응게.”


안방에 놓인 소박한 밥상 위로 된장국 김이 서글프게 피어올랐다. 삼촌의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리던 방 안을 찢어발긴 것은 비처럼 쏟아지는 연사음이었다.


타타탕— 타당!


삼촌의 손에서 숟가락이 힘없이 떨어져 장판 바닥을 굴렀다. 엄마는 짐승처럼 울부짖는 삼촌을 뒤에서 껴안고 함께 무너져 내렸다. 결국 삼촌은 나가지 못했다. 벽에 기대앉은 삼촌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유영했고, 엄마는 셔터 틈새로 밖을 감시하며 숨을 죽였다.

새벽안개가 미용실 거울에 서늘하게 맺힐 즈음, 셔터를 부술 듯한 진동이 울렸다. 엄마가 “이 씨 아저씨?” 하며 셔터를 올리자, 새벽보다 차가운 군복의 중사가 안갯속에서 걸어 들어왔다. 뱀처럼 가늘게 뜬 눈이 미용실 내부를 훑었다.


“여기가 진미용실이네.”


삼촌은 본능적으로 나를 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삼촌의 심장 박동을 등 뒤로 느끼며 새총을 꽉 쥐었다. 중사의 군화가 타일 바닥을 짓밟으며 안방으로 향했다. 미용실 불빛 아래 드러난 중사의 얼굴은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의 시선이 삼촌의 눈에 박혔다.


“대학생이야? 그렇게 보이는데, 내 눈에는.”


엄마의 손이 중사의 등 뒤에서 가늘게 떨리며 도리질을 했다. 하지만 삼촌은 나를 내려놓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 전남대생입니다.”


중사가 가래 끓는 웃음을 터뜨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독한 연기가 삼촌의 얼굴을 희뿌옇게 덮었다.


“그니까. 평범한 시민들이 순식간에 빨갱이가 되더라고. 너희 친구들, 아까 도청에서 싹 죽었어. 몸이 걸레가 돼서 굴러다니더라. 넌 빨갱이가 아니라서 다행인 줄 알아. 아니었으면 너도 거기 섞여 있었을 테니까.”

삼촌의 주먹이 하얗게 떨리고 있었다. 핏발이 선 삼촌의 눈은 중사를 향해 고정되었고, 소매를 잡은 내 손으로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중사는 거울 앞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제 머리를 만졌다.


“아줌마, 머리가 많이 지저분하죠. 좀 다듬어 주세요. 최대한 빨리.”


엄마는 주춤거리다가 결국 가위를 들었다. 엄마의 가위질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듯 느리고 무거웠다. 중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손으로 엄마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위아래로 훑었다. 삼촌의 어깨가 움찔거렸지만, 엄마는 거울을 통해 속에서 삼촌을 향해 간절한 눈짓을 보냈다. 제발 참으라는 비명 같은 눈짓이었다.

엄마의 가위 끝이 중사의 뒷덜미 근처에서 파르르 떨렸다. 중사는 거울 속에서 그 떨림을 비웃듯 바라보며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그는 마치 백정에게 목을 맡긴 짐승처럼 기묘하게 평온해 보였는데, 그 평온함이 도리어 소름 끼쳤다. 기어이 삼촌이 가위를 뺏으려 달려들자, 엄마는 삼촌의 팔을 으스러지도록 잡고 내동댕이쳤다.


“안 돼야, 운용아! 잉? 제발...”


엄마의 눈은 중사를 향한 분노보다, 동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굴욕보다 무거운 생존의 비명이었다. 중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 광경을 구경하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너희도 미쳤고, 나도 미쳤지. 여긴 원래 미친놈들만 사는 곳이야.”


그의 목소리는 구멍 난 항아리 속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텅 비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사람처럼 힘없는 그 목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공허했다.


그때, 셔터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커튼집 이모가 헝클어진 머리를 헤치며,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들이닥쳤다. 이모는 중사의 군복자락을 다짜고짜 붙잡고 늘어졌다.


“니들이 사람이냐? 니들도 부모 있고 자식 있을 거 아녀! 근디 어찌케 사람을... 어찌케 사람을 그렇게 짐승 죽이듯 해부러!”


군인들이 중사에게 들러붙은 이모의 손목을 비틀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엄마가 달려가 이모를 넘어진 이모를 껴안았지만, 중사는 이모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비열하게 웃었다.


“아줌마 남편도 빨갱이야? 도청에 있었으면 지금쯤 시체더미 속에 예쁘게 쌓여 있겠네.”


이모의 비명이 미용실을 가득 채울 때, 유미반점 아저씨가 나타났다. 곰팡이 냄새가 밴 낡은 군복, 그 가슴팍에 달린 빛바랜 훈장이 새벽빛에 희미하게 번뜩였다. 아저씨는 저는 다리를 끌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차렷 자세를 취하며 중사 앞에 섰다.


“후배님들... 이제 그만해주면 안 될까. 나도 맹호부대에서 싸웠던 사람인디...”

아저씨의 얼굴에는 두려움을 기어이 넘어선 단호함과 절실함이 서려 있었다. 중사의 웃음소리가 미용실 천장에 부딪혀 흩어졌다. 아저씨를 뚫어질 듯 쳐다보던 중사가 갑자기 아저씨의 다친 다리를 군화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아저씨가 낮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중사는 아저씨의 가슴에서 훈장을 거칠게 뜯어내 타일 바닥에 던졌다. 그러고는 군화 뒤축으로 그것을 짓뭉개버렸다.


“나라가 준 훈장은 국가에 충성할 때나 쓰는 거야! 빨갱이 감싸는 놈한테는 쓰레기일 뿐이지.”

중사는 다시 미용실 의자에 앉더니 담배 하나를 더 꺼내어 물었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통해 나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중사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덕림산... 맞지? 너 거기 있었지!”


엄마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중사가 내게 다가와 엄마의 얼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내동댕이치듯 물었다.


“넝마주이 알지? 그 거지새끼들 어디 숨었어?."

엄마는 떨리는 입술을 짓이기며 단호하게 내뱉었다.


"몰라요. 정말 몰라요."

"그 새끼들을 모른다고?"


중사가 시선을 내게 돌렸다. 그는 성큼 다가와 내 볼을 터질 듯이 움켜잡고 윽박질렀다. 독한 담배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꼬마야. 넝마주이 아저씨들 알지? 그 새끼들 지금 어디 있어?"


나는 주머니 속 새총을 꺼내 고무줄을 끝까지 당겼다. 중사는 새총을 겨누는 내 모습을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보듯 바라보았다.


팽-!


파마 종이를 둥글게 말아 만든 단단한 총알이 중사의 미간에 명중했다. 중사가 움찔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주 짧게 중사의 입술이 벌어진 사이, 매캐한 담배 연기 대신 역한 술 냄새가 훅 끼쳐 왔다. 나는 다시 새총알을 장전해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중사는 이번에는 피할 생각도 없다는 듯 비열한 웃음을 띠었다.


“자, 쏴봐. 어디 한번 쏴봐.”


그 비웃음 끝에 삼촌이 엄마가 떨군 가위를 주워 들고 중사에게 달려들었다. 중사와 군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삼촌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방아쇠에 걸린 중사의 손가락이 서서히 당겨지려던 그 찰나, 미용실 건너편 도로에서 귀를 찢는 총성이 폭발했다. 단 한 발의 총소리가 돌고개의 새벽을 정통으로 갈랐다.

“야 이 개새끼들아!”


그 외침은 돌고래 사거리를 돌고 돌아, 덕림산 정상까지 뻗어나갈 듯 우렁찼지만, 귀가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시원하게 들렸다. 이 씨 아저씨와 넝마주이들이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몇 발 더 쏘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월산 상회 앞 평상을 뒤엎고 은폐했다. 중사도 헬멧을 추스르며 미용실 밖을 나가 평상 뒤로 몸을 날렸다.


“사격개시!”


중사의 명령과 함께 군인들이 넝마주이들을 향해 일제히 화염을 뿜었다. 미용실 유리가 날카로운 총성에 비명을 지르듯 부르르 떨렸다. 엄마와 삼촌은 나를 껴안고 방으로 뛰어들었고, 유미반점 아저씨와 커튼집 이모도 그 뒤를 따라 몸을 숨겼다. 넝마주이들은 미용실 쪽으로는 단 한 발도 쏘지 않은 채, 군인들의 총신이 달궈질 때까지 화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사격이 잦아들자 넝마주이들이 보란 듯이 덕림산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중사의 추격 명령과 함께 군인들이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중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쳤다.


군화 소리가 멀어지자 거짓말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엄마의 시선이 신호등 건너편에 멈췄다.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넝마 자루 하나. 어마와 삼촌이 달려가 자루를 헤쳤을 때, 그 안에는 피와 흙에 젖은 채 잠든 듯 누워 있는 월산상회 아저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