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예전에는 자느라 듣지 못했던 그 소리가 요즘은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선명하고 험악하게 고요한 밤을 찢어놓았다. 엄마와 나는 나란히 누워 있었지만, 곁눈질로 본 엄마의 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쌓여갈수록 엄마의 등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얼마 후, 적막을 깨고 미용실 셔터가 부서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맨발로 뛰어나가 급하게 셔터를 올렸다. 안갯속에서 넝마주이 이 씨 아저씨와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은 총을 들고 있었고 몇몇은 맨손이었다. 이 씨 아저씨는 방 안에서 겁에 질린 나를 발견하고는, 짧게 윙크를 보내며 툭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 장난 같은 몸짓이 묘하게 재미있어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아저씨들의 발치에 놓인 커다란 넝마 자루를 보는 순간, 나는 다시 숨을 죽였다.
“아이고, 이 놈 업어 오느라고 힘을 다 뺐어요. 여러 명이 번갈아 들기는 했지만서도.”
이 씨 아저씨는 목에 둘린 ‘진미용실’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수건은 이미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진’이라는 푸른 글자만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라고, 제발 가라고 해도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담아 왔소. 근처 병원에서 마취제를 좀 구해다가 그냥 재워부렀소. 한두 시간 있으면 깨어날 것인디... 미안해요.”
엄마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아저씨와 넝마 자루를 번갈아 보았다. 자루 안에서 풀려나온 삼촌의 얼굴은 거짓말처럼 평온했다. 마치 이 미친 세상에서 잠시 도망쳐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 같았다. 엄마는 삼촌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고, 아저씨들이 삼촌을 들어 방안에 눕혔다.
엄마는 미용실 밖으로 나와 아저씨에게 정성을 다해 허리를 굽혔다. 엄마는 아저씨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고, 아저씨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아니에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아저씨의 환하던 얼굴이 이내 진중해지며 엄마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기... 월산상회 아저씨도 데려올까요? 제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 양반도 워낙 고집통이라... 지금이라도 가서 삼촌처럼 담아 올까요?”
이 씨 아저씨의 말에 엄마의 시선이 허공에서 툭 멈춰 섰다. 엄마는 대답 대신 천천히 손을 들어 제 입술을 꾹 눌렀다. 혹여나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무슨 말을 스스로 틀어막으려는 듯 보였다. 엄마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거칠게 흔들리다가, 이내 아저씨들이 떠나왔던 양동시장 쪽 어둠에 고정되었다.
“거기 남아 있는 사람들... 다 죽을까요?”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 같았다. 이 씨 아저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움켜쥐고 있던 이 씨 아저씨의 손을 스르르 놓아주었다. 엄마는 떨리는 숨을 크게 한 번 내뱉더니,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 아저씨는 엄마의 그 깊은 정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짧게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자!”
아저씨들이 안갯속으로 멀어지는 동안에도 엄마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다시 셔터가 내려갔다. ‘드르륵, 쾅.’ 삼촌은 여전히 마취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엄마는 자리에 눕는 대신 미용실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다시 멀리서 간헐적인 총성이 들려왔다. 나는 주머니 속의 새총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삼촌이 고쳐준 새총의 고무줄이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라도 튕겨 나갈 듯한 긴장감이었다.
나는 조용히 새총을 꺼내 거울 앞에 놓았다. 거울 속에는 새벽 세 시를 가리키는 시계와, 깊은 잠에 빠진 삼촌,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 굳어있는 엄마의 옆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 순간, 셔터 틈새로 한 줄기 차가운 오월의 새벽 공기가 스며들어 내 발목을 할퀴고 지나갔다. 오월 새벽의 냄새는 샴푸와 아세톤 냄새를 집어삼켜 미용실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