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무질서

8화

by 황 영


엄마가 월산상회 아저씨를 바라보는 눈빛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나 운용이 삼촌을 향한 다정함과는 결이 다른 무엇이었다. 아저씨가 엄마의 젖은 손을 투박하게 맞잡았다.


“나도 갈라요. 설마 죽기야 하것소. 내가 운용이 찾아서 내 옆에다가 딱 붙여 놓을 것인게, 걱정하지 마쇼.”

“꼭... 가야것소? 안 가면 안 될까...”

“에이, 나도 애국 좀 해야제. 나중에 영준이가 그때 뭐 했냐고 물어보믄 할 말은 있어야 안 쓰것소? 내 걱정은 말고 딱 기다리고 있어요. 내 운용이랑 같이 돌아올라니까.”


엄마는 아저씨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내 눈치를 살피며 아저씨를 짧게 끌어안았다. 엄마가 아저씨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였지만, 내 귀에는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오월의 봄바람 소리만 스칠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엄마를 한 번 더 꽉 안아준 뒤 지체 없이 트럭 위로 뛰어올랐다.


다시 트럭의 엔진 소리가 사거리의 공기를 거칠게 찢어놓았다. 트럭 위에는 ‘진미용실’ 수건을 목에 두른 이 씨 아저씨와 넝마주이들, 그리고 월산상회 아저씨가 나란히 서 있었다. 누군가 선창한 애국가가 빠른 템포로 울려 퍼졌다. 트럭이 멀어질수록 아저씨들의 목에 둘린 하얀 수건들이 깃발처럼, 혹은 자유를 찾아가는 하얀 새 떼의 날갯짓처럼 파닥거렸다. 트럭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엄마는 내 손을 꽉 쥔 채 미용실 안으로 들였다.


‘드르륵, 쾅.’


무거운 셔터가 내려앉자 미용실은 순식간에 고립된 섬이 되었다. 텅 빈 바닥에는 아저씨들이 흘리고 간 물기와 머리카락들이 뒤엉켜 떠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쭈그려 앉아 젖은 머리카락들을 손으로 직접 주워 올렸다. 그제야 참았던 뜨거운 눈물이 툭, 하고 바닥의 머리카락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아침이 밝았다. 엄마는 밤새 단 한숨도 자지 못한 듯했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엄마는 굳게 닫힌 셔터 틈새로 바깥을 살피는 일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정적을 뚫고 커튼집 이모가 딸 은숙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긴박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은숙이에게 삼촌이 사다 준 동화책 한 권을 건넸다.


은숙이는 아직 글자를 다 떼지 못해 내 얼굴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이건 무슨 뜻이야?”


은숙이가 작은 손가락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짚었을 때, 셔터 밖에서는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라는 날카로운 확성기 소리가 철판을 때리고 들어왔다. 미용실 안의 파마약 병들이 그 진동에 미세하게 달그락거렸다. 나는 짐짓 으쓱해진 기분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쳐주었지만, 내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피가 부족합니다!”라는 비명 같은 외침에 자꾸만 묻혔다.


결국 엄마는 커튼집 이모에게 나를 부탁했다.


“언니, 도청 쪽으로 가보려고. 운용이도 만나보고, 병원에 들러서 피라도 좀 나눠주고 와야 쓰겄어.” 이모가 말릴 새도 없이 엄마는 채비를 서둘렀다. 엄마는 평소와 달리 무서운 표정으로 내 눈을 응시하며 못을 박았다.


“영준아, 이번에는 절대로, 절대로 밖에 나가면 안 된다. 알았지?”


엄마가 떠난 뒤, 유미반점 아저씨가 미용실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아저씨는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도청 앞의 소식들을 풀어놓았다. 아저씨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지만, ‘상무관’이니 ‘시신’이니 하는 단어들이 파편처럼 날아와 동화책 위에 박혔다.


“아니, 근데 왜 서울에서는 우리 보고 폭도라고 하는 거여? 아이고, 억울해서 못 살겄네!”


월남전에서 다리를 다쳤다던 노병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그 통곡 위로 다시 무심한 확성기 소리가 사거리를 훑고 지나갔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질서를 유지해 주십시오.”


엄마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핏기 없는 지친 얼굴로 미용실로 돌아왔다. 엄마가 셔터를 내리고 등 뒤로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을 때, 하루 종일 나를 할퀴던 마음속의 무질서가 비로소 조용히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