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바람을 탄 수건

: <광주 돌고개 진미용실> 1부 끝

by 황 영




엄마와 삼촌은 월산 상회 아저씨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총상은 없었지만, 아저씨의 몸은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우리는 이틀간 병원에 머물렀다. 아저씨를 간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곧장 미용실로 돌아갔다가는 군인들이 다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엄마는 수없이 공중전화 다이얼을 돌린 끝에 아저씨의 먼 친척을 겨우 찾아냈다.


아저씨가 서서히 기운을 차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우리는 미용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안심하지 않았다. 엄마는 삼촌에게 곧바로 짐을 싸게 했고, 우리는 도망치듯 광주를 빠져나와 엄마와 삼촌의 고향인 해남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해남의 어느 바닷가였다. 낡은 나무 표지판에는 ‘송호리 해수욕장’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해남의 바다는 비현실적일 만큼 고요했다. 코끝을 아리게 하던 돌고개 사거리의 독한 화약 연기 대신, 눅눅하고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바람을 타고 스쳐 왔다.


아침이면 엄마와 삼촌은 지인의 논밭으로 나가 일손을 도왔다. 누렇게 익은 보리 대를 베어 묶거나, 모내기를 앞둔 무논의 잡풀을 뽑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먼발치 정자에 앉아 책을 펴놓고, 뙤약볕 아래서 말없이 허리를 숙인 채 흙을 만지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해 질 무렵이면 엄마와 나는 바닷가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널린 조개껍데기를 줍거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갯벌에 용감하게 들어가 낙지랑 조개를 한 바구니씩 담아 오곤 했다. 엄마는 나에게도 같이 들어가자고 권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검은흙 위에 발을 내디디지 않았다. 엄마의 팔이 깊은 갯벌 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나는 덕림산 구덩이 위로 솟아올랐던 그 손이 생각나 소름이 돋아서였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엄마와 삼촌은 단 한 번도 미용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삼촌은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멀리서 보이는 삼촌의 뒷모습은 늘 조금씩 깎여 나가는 해안선처럼 쓸쓸해 보였다. 가끔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일 때면, 삼촌의 옆얼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광주를 잊었고, 죽음을 잊었으며, 셔터 문을 부술 듯 두드리던 군화 소리를 잊으려 애썼다.


한 달 만에 돌고개 사거리로 돌아왔다. 삼촌은 좀 더 그곳에 머물겠다며 우리를 터미널까지 배웅해 주었다. 미용실 셔터를 올리자 묵은 먼지가 안개처럼 쏟아졌다. 엄마는 구석 타일 틈에 박혀 있던 중사의 담배꽁초를 발견하고 한동안 굳은 듯 멈춰 섰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하던 엄마는, 이내 빗자루로 그것을 쓸어내 쓰레기통 깊숙이 처박았다.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삭삭’ 소리를 내며 가위가 다시 공중을 가르기 시작했지만, 평소 미용실을 채웠던 수다 대신 무거운 침묵만이 거울 속을 떠다녔다.


월산상회 아저씨는 병원에서 돌아온 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는 하루 종일 평상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고,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느닷없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얼마 후 구급차에 실려 가던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 월산상회의 셔터는 굳게 닫혔고 그 위로 붉은 녹만이 슬프게 피어올랐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잠시 가위를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울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날 저녁, 엄마는 정성껏 끓인 보리차 한 잔을 들고 미용실 밖으로 나갔다. 평소 아저씨가 앉아 계시던 월산상회 앞 평상 구석에 찻잔을 내려놓은 엄마는, 한참 동안 그 찌그러진 평상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고생하셨소... 이제 여기 말고,, 부디 더 좋은 곳으로 가시어.”


엄마의 목소리는 새벽안개처럼 낮고 흐릿했다. 며칠 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아저씨가 묻힌 망월동 동산에 다녀왔다. 화려한 꽃다발 대신 엄마는 직접 깎은 사과 한 접시를 무덤 앞에 올리고, 그 곁에 막걸리를 채운 종이컵을 놓아두었다. 엄마도 한 잔을 따라 시원하게 들이켰다. 망월동에서 바라본 여름 하늘은 비현실적일 만큼 맑고 높았다.


커튼집 이모네도 이사를 간다고 했다. 친정이 있는 강진 어딘가로 간다고 한 것 같았는데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이삿짐 트럭이 사거리를 떠나는 날, 나는 은숙이가 좋아했던 동화책 하나를 선물했다. 커튼집 이모는 은숙이가 들고 있던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대신 받아 들었다. 덕분에 은숙이는 비어 있는 두 손으로 내 책을 소중히 받아 들 수 있었다. 트럭이 멀어져 갈 때, 나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사거리는 겉보기에 평화를 되찾은 듯했다. 다시 버스가 다녔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장으로 향했다. 딱 한 가지, 넝마주이 아저씨들의 행방만 빼고 말이다.


"엄마, 이 씨 아저씨는?"


내 물음에 유미반점 아저씨의 머리를 다듬던 엄마의 가위질이 멈췄다. 엄마는 대답 대신 사거리 건너편, 이제는 주인 잃은 넝마 자루 하나 보이지 않는 그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씌익씌익,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유미반점 아저씨가 낮게 읊조렸다.


"도청 뒤편에서 마지막까지 안 가고 버틴 게 그 양반들이라더니... 시체도, 이름도 남은 게 없다네."


가위가 다시 움직였다. 삭삭,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 위로 멀리서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날 저녁 미용실 문을 닫고 청소할 때, 엄마는 바닥에 떨어진 잘린 머리카락들을 여전히 소중히 모아두었다. 그것들을 쓸어 담는 엄마의 손길은 예전보다 더 지극했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여름 향기가 숲을 채우던 오후, 나는 성철이 형을 따라 다시 덕림산에 올랐다. 주머니 속 새총의 고무줄은 삼촌이 당겨준 그 팽팽한 긴장감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군인들이 파놓았던 구덩이를 지날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주 살짝 곁눈질했다. 다행히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그 기괴한 손가락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구멍 속에는 마른 이파리들만 뒹굴고 있었다.


나는 형들 몰래 넝마주이들의 움막으로 향했다. 사람의 기척은 사라졌고, 무너진 지붕 사이로 잡초만 무성했다. 폐허 속을 서성일 때, 노란 병아리 몇 마리가 삐약거리며 내 운동화 주위를 맴돌았다. 군화 밑에서 죽어가던 꿈속의 병아리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 나는 무릎을 꺾고 앉아 끅끅거리며 울음을 삼켰다.

그때, 시원한 산바람이 움막 주위를 휘감았다. 빨랫줄 위에서 무언가 날카롭게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 '진미용실'이라는 파란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수건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엄마가 내주었던 낡은 그릇들도 움막 구석에 나란히 놓여,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언덕에 앉아 그 수건이 바람에 몸을 비틀며 허공을 치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영준아! 가자”


형들의 부름에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순간 주머니 속에 있던 새총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새총을 주워 한 번 세게 움켜쥐었다가, 움막 앞 평상 위에 가만히 놓아두었다.


내려오는 길, 나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로 ‘진미용실’ 수건이 펄럭이는 소리만 오월의 바람을 타고 산 아래까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