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인문학, 영어 지문, 인문학적 소양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진출하던 그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영광과 환희의 축제를 즐기고 있던 그 날, 난 서울 한남동 옥탑방 허름한 자취방에서 이삿짐을 싸놓고,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옥탑방에 살았던 3년 남짓의 기간은 비루하지만 행복했었다. 8평 남짓 옥탑방 앞쪽 아래에는 유명한 부잣집들이 즐비하고, 그 너머에는 한강이 보이는 뷰를 가졌었다. 거의 매일 밤,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영화감독으로 성공을 꿈꾸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저기 3층 녹색 대문 집으로 이사 갈까, 아니면 저기 담벼락 높은 파란 대문 집으로 이사 갈까 상상하며 히죽거리곤 했었다.
하릴없는 날들이 이어질 때도, 막막하기만 한 내 미래를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했었다. 기죽지 말자며, 언젠가는 저기 보이는 '하이얏트' 호텔을 '김밥천국'만큼 자주 들락거릴 거라며 그렇게 차오르는 눈물을 깡소주로 누르곤 했었다. 하지만 이사하기 전날밤의 광경은 달랐다.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를 감히 쳐다봤던 내 자신에 대한 한없는 자책이 몰려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소리와 나팔소리는 나에게 오히려 이 나라가 나를 알아봐 주지 못한 원망을 확인해 주는 듯 계속 귀에 거슬렸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이 밉게 느껴지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일 거라는 외로움과 원망에 두 귀를 막고 처량하게 울고 있었던 것이다.
써 놓은 시나리오도 버렸고, 단편영화제에 출품했던 영화 테이프도 버렸다. 하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책'이었다. 불쌍한 친구 도와주겠다며 자기 아버지 트럭까지 몰고 온 친구 녀석은, 쌓인 책들을 보며 생각보다 무거우니 안 볼 책 있으면 버리고 가자고 했다. 좁은 옥탑방에 어울리지 않게 꽤나 많았던 그 책들을 난 단 한 권도 버릴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이 다 읽지도 못한, 그냥 사놓기만 한 책들이었지만, 적어도 그 책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샀는지, 선물을 받았다면 누구에게 언제 왜 받았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책 한 권, 한 권에 오버랩되는 사람, 사건이 다 기억났다. 그래서 그 책을 버린다는 것은 내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것 같아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꿈, 자존심은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지방에 있는 더 허름하고 초라한 원룸에 도착했다. 친구 녀석을 보낸 후, 짐도 정리하기 전에 아무 책이나 한 권 잡고 아직 어색하기만한 방 구석에 풀썩 앉았다.
당시 청계천의 헌 책방을 지나면서, 이런 책 하나쯤은 책장에 꽂혀 있어야 '있어 보인다'며 샀던 나의 허풍과 허위와 위선의 상징이었던 바로 이 책이 이사 온 첫날밤, 내 손에 들려 있었다. 한 페이지 넘기는 게 버거웠다. 한국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거의 밤이 새도록 그 책을 놓지 않았다. 사실 책을 보며 딴생각을 했다. 영화감독에게 인문학적 교양은 필수라며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다니던 나의 과거가 한없이 부끄럽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철학은, 역사는, 예술은,
그리고 영화는,
그저 남에게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능력 없는 자의 가면이자 망상이었다.
그렇게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었다. 당장 오늘,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그때, 그 일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목숨을 걸진 않았지만, 목숨이 걸려 있었다. 쉽게 생각했지만, 늘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다.
두 가지만 명심하자 했었다. 첫째는 절대로 학생들을 '돈'으로 보지 말자였다. 아무리 누추한 삶에 처해 있다 해도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의 엄중하고도 고귀한 행위의 가치를 절대 잊지 말자 했었다. 둘째는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자였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철저한 준비는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사람들은 다 공감할 수 있듯, 아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었다. 어렵게 준비해서,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었다. 지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온라인 강의의 소위 잘 나간다는 '일타'강사들의 강의도 많이 참고했었다. 그 덕분에 문제풀이를 할 수 있는 영어적 능력은 점점 더 튼튼히 쌓였고, 학생들의 강의에 대한 반응도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문을 읽다 보니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많았다. 해설지를 봐도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는 내용이니, 그냥 대충 문제만 풀고 넘어가자고도 해봤다. 그런 수업을 하고 온 밤이면, 모르는 내용을 아는 척한, 혹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 나 자신이 그렇게 밉고, 짜증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영화감독을 준비할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관계대명사, 준동사, 문장의 도치와 같은 문법적인 요소들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쓰여진 글을 이해하기 위해 익혀야 되는 지극히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훨신 더 중요한 것은 영어라는 언어적 수단을 통해 필자가 전달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수능영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 전범위를 다루는 범교과적인 내용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다루지 않지만 당장 대학에 진학한 후 필요한 개론적인 내용들, 즉 탈교과적인 내용들의 소재들도 많이 출제되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과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관련 자료를 검색하며, 한 단락만 출제되던 문제들의 출처를 찾아내, 앞뒤로 살을 붙여 왜 이 지문에 이런 글이 쓰여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필요하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고, 살 수 있을 때는 한 권씩 사다 모았다. 가끔씩 수업 시간에 그 책을 가져와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사실 이 문제의 출처는 이 책이다라고 보여주곤 했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나 같은 영어선생은 처음 본다며 칭찬해 주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가르치는 보람이 주는 달콤함으로 살맛이 낫다.
수업 준비를 할 때마다, 지문과 관련된 지식과 독서량도 비례했다. 그에 따라 인생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지문은 거의 전부 인문학과 관련된 지문들이었다. 수능과 모의고사, 그리고 영어 교과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차려준 양질의 밥상이었다. 그 밥상에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반찬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인문학'이었던 것이다. 그 밥상을 덩달아 같이 받아 먹다 보니, 몸과 마음이 좋은 영양소들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I am a mature student who has just completed a part-time degree course in History and Sociology. I enjoyed every moment of it, learning for learning’s sake and gaining wonderful knowledge of the humanities and many other subjects. However, whenever I talked with friends about my studies, they would invariably ask me, “So what are you going to do with your degree? What’s it for?” They would persist and say that I must use it somehow to advance my job prospects, or it would be a waste of time. It’s a shame they don’t understand that education and knowledge for its own sake is never wasted.
[2011년 6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22번]
의역 : 나는 역사와 사회학 파트타임 학위 과정을 이제 막 끝낸 중년의 학생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즐겼는데, 배움 자체를 위해 배우고, 인문학과 많은 다른 과목에서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내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내게 늘 묻곤 했다. “그래서 네 학위로 뭘 할 거니? 어디다 쓸건대?” 그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취업을 위해 그것을 사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 낭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자체를 위한 교육과 지식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모르다니 참 유감이다.
그렇게 20년을 살았고, 난 아직도 그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난 인문학자가 아니다. 영어강사를 해야 해서, 이왕이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영어뿐만 아니라, 인문학 공부도 했다. 잘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방법과 정도가 다를지언정 누구나 이렇게 했을 것이고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단편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아무 비판 없이 아이들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여러책과 관련 논문들을 비교해 가면서,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갖춘 내용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고3 자녀들 둔 한 학부모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참고하라며 지문의 이해에 필요한 내용을 작성하여 나눠준 유인물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며 나에게 칭찬해 주었다. 둘째가 중 3인데 그 아이한테도 읽혀 주었다며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내용들을 간추려서 요약정리하고, 거기에 약간의 재미있는 상상력을 덧붙였을 뿐인데, 너무나 좋아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그일은 나에게 큰 다짐을 하게 해주었다. 20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생겼던 나의 노하우 중에 하나인 인문학적 기초 소양을 정리하는 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명감이 생겼다. 누군가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담긴 책을 꼭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 바로 이 다짐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A liberal arts education can be valuable for many careers. It teaches you how to think about the problems and issues you will face in the real world. It gives you perspective, analytical and problemsolving skills, and creative strengths ― which are all important in just about any career you can contemplate.
[2019년 3월 고3 전국 연합 모의고사 20번]
의역 : 인문학 교육은 많은 직업에 유용할 수 있다. 그것은 여러분이 현실 세계에서 직면할 문제와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통찰력, 분석 및 문제 해결 기술, 그리고 창의력을 주는데, 이는 모두 여러분이 고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장에서 중요하다.
학생들이 가끔 인문학을 배워서 어디에 쓰냐고 물어본다. 그때 마다 나는 당당하게 내가 믿는 진리를 말해 준다. 인문학은 먹고 사는데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융합의 조건으로 보조하는 하위 개념이 아니라 말한다. 그리고 당장 수능과 내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함도 아니라고 말한다. 인문학은 각자 삶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통해 궁극적인 행복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주는 삶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인문학은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주고 자신을 성장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학생들을 위해서, 학부모을 위해서, 그리고 이 글이 도움될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인문학적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수업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있는 일임에 틀림없으며 내 삶의 최고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영어 강사를 하면서 영어 지문을 매일 평균 10개씩 보고 있다.
20년 동안 영어 강사를 하면서 인문학에 관한 지식을 매일 평균 2개씩 쌓고 있다.
20년 동안 영어 강사를 하면서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다.
20년 동안 영어 강사를 하면서 밥도 먹고, 딸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