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지문 속의 인문학> 수렵채집 사회는 행복했을까?

feat. 원시인, 수렵채집인(Hunter-Gatherer)

by 황 영

나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고독한 생존가'(원제 : Marooned)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Marooned'는 사전적으로 '도망칠 수 없는 장소에 남겨진', '어떤 지역이나 장소에 고립된'이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의 과거분사이며 형용사로 쓰인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 '에드 스테포드'는 매력 덩어리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메가톤급 인기를 얻었던 '맨 앤 와일드(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어 그릴스'는 카메라맨 등의 스텝들과 함께 극한지역에 낙오된 후 그곳에서부터 안전한 지역까지의 '탈출'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에드 스테포드'는 말 그대로 '생존'에 주력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카메라맨도, 다른 스텝도 없다. 자기 혼자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조작하며 촬영한다. 혹시나 모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한 위성 전화기와 응급 용품만을 가진 채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오지에서 홀로 생존해 가는 그에게,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고야 마는 상록수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운로드.jpeg 베어 그릴스 <출처 : 위키미디아>

굼벵이를 한 입에 넣고, 내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외치는 그의 광기 어린 환희의 함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맡아서는 안 되는 냄새를 내뿜는 스컹크를 사냥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고기를 풀린 눈을 한 채로 입에 넣으며, 야릇하게 지어내는 그의 미소는 나에게 공감각을 뛰어넘는 탈감각적 심상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maxresdefault.jpg 에드 스테포드 <출처 : 유튜브 캡처>


너무 귀여워 제발 먹지 말았으면 하는 거북이와 너무 역겨워 제발 먹지 말았으면 하는 야생쥐를 불에 구워 입에 넣을 때,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오는 감정은 그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포만감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디스커버리 유튜브 채널의 자막을 넣는 편집자의 찰진 유머와 함께 'Synergy(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며 엄청난 조회수와 함께 여전히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풀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주변의 환경을 이용해 거주지를 마련하며, 먹을 것을 수렵 채집하는 그의 생활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마치 모든 인간의 DNA에는 원시사회로의 회귀본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단순한 생존이 아닌, 에드 스테포드의 행복이 넘쳐 보이는 자급자족, 절검 지심 (節儉之心 :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마음)의 삶에서 시청자는 수렵 채집인에 대한 진한 'Nostalgia(향수)'를 느낀 것이다.


MBN 교양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이 시청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20190710171813858898_6_710_473.jpg <출처 : MBN>


다운로드.png <출처 : SBS>






과거 수렵 채집의 생활을 했던 원시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편향의 끝판왕급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원시인에 대한 상상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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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에 살았던 '사람'(Homo)들이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벌거벗은 모습의 그들은 언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어눌한, 동물의 울음소리라고 해도 무방한 음성인 '우가우가'와 같은 소리로 서로서로의 본능을 드러낸다. 낮에 운 좋게 잡아온 짐승들을 불에 구워 나눠 먹는다. 무질서하고, 게걸스럽다. 그 와중에 갑자기 싸움이 일어난다. 한 원시인이 옆에 있던 이름 모를 큰 동물의 정강이뼈를 집어 들어 재빠른 속도로 상대방의 머리를 가격한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통에 나뒹구는 그 원시인의 괴성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고, 때린 원시인은 뼈를 하늘 위로 높이 쳐들며, 늑대와 같은 울부짖음을 내뱉는다. 배부름을 채운 원시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늑대소리를 함께 내며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를 둥글게 돌며 춤을 춘다. 피떡이 되어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원시인의 몸이 이내 경직되자, 서너 명의 다른 원시인들이 쓰러진 원시인의 팔과 다리를 나눠 들어 동굴 밖으로 옮기더니, 주저 없이 동굴 아래 깊은 계곡으로 던진다. 광란의 춤과 광기 어린 괴성은 멈추지 않고 밤새 계속된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을 묘사했던 방식은 원숭이와 사람 사이, 미개한 족속, 그 자체였다. 19세기 이전, 유럽에서 시작된 인류학(anthropology)은 이들의 문화를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 규정했다. 19세기 중반, 다윈의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출판되면서 공식적으로 진화의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인간은 '미개한' 문명에서 '문화인, 문명인'의 단계로 발전된다는 개념이 더욱더 강화되었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화석 분석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한 인류학의 연구는 이전까지 가졌던 고대 인류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게 된다. 수능과 모의고사 출제 지문은 많은 연구자료를 인용하면서 이러한 통념들을 바로 잡고자 날카로운 지적을 이어왔다.


We might pity human hunter-gatherers for their stuck simplicity, but we would be making a mistake. They held extensive knowledge, knew deep secrets of their lands and creatures.
[2020년 11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37번]

의역 : 우리는 수렵 채집인들이 꽉 막힐 정도의 단순함을 가졌다고 동정할지도 모르지만,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광범위한 지식을 가졌고 그들의 땅과 생명체의 대한 깊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수렵채집인들의 삶이 '농업 혁명' 이후의 삶보다 더 비참하고 불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수급할 수 있었던 농업의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평생 굶주림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고, 그로 인해 이리저리 떠도는 기약 없는 방랑의 생활을 해야 했으며, 거듭되는 위험한 사냥으로 인해 고단하고 슬픈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라 단정 짓는다.


Humans who lived as hunter-gatherers more than 10,000 years ago fitted into ecosystems by acting as predators, and on occasion they probably also served as 'prey'. [2013년 11월 고1 전국 연합 모의고사 30번]

의역 : 10,000년 그 이전에 수렵 채집인으로 살았던 인간은 포식자의 역할을 하면서 생태계에 잘 적응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로 '먹잇감'으로서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수렵채집인의 삶은 훗날 농사짓는 후손들에 비하면, 청빈 낙도, 유유자적의 신선놀음이었고 오늘날 워라벨의 최상급 버전이었다.


Compared with farmers, hunter­gatherers led a more life. In effect, hunter­gatherers work two days a week and have five­day weekends.
[2015년 3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31번]

의역 : 농부와 비교하여, 수렵 채집인은 더 여유로운 삶을 영위했다. 사실상 수렵 채집인은 일주일에 이틀을 노동하고 5일의 주말을 보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바로 이점을 2부 농업혁명 편에서 지적한다. 농업혁명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100% 이익만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농사를 짓는 일은 생각만 해도 괴롭다. 날이 좋아서 일해야 하고, 날이 좋지 않아서 일을 더 해야 한다. 날마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누군가는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 인류의 만병의 원인, '스트레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해 수렵 채집인들은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우러 나갔고, 어느 정도 만족하면 절대로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연이 주는 교훈, 중용의 미덕까지 갖췄다.


When considered in terms of evolutionary success, many of the seemingly irrational choices that people make do not seem so foolish after all. They regularly make choices designed to produce not the best opportunity for obtaining a hyperabundant supply of food but, instead, the least danger of ending up with an insufficient supply. If our ancestors hadn’t agonized over losses and instead had taken too many chances in going after the big gains, they’d have been more likely to lose out and never become anyone's ancestor.
[2017년 6월 수능 모의평가 40번]

의역 : 진화적 성공의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사람들이 행하는 비이성적인 선택들 중에 많은 것들이 결국에는 그다지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엄청나게 풍부한 양의 식량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갖기 보다는 오히려 부족한 식량 공급을 초래하게 되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관된 선택을 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손실에 대해 고심하지 않고, 대신에 큰 이득을 얻으려고 너무 많은 모험을 했다면, 그들은 멸망하여 결코 어느 누구의 조상도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을 향한 추구. 현대인에게 원시인의 삶은 유토피아처럼 느껴진 것이다. 삶의 일부라도 단순한 자연으로의 도피를 뛰어넘어 원시인 사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은 유행처럼 퍼져 나갔고, 특히 몇몇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시작한, 원시인 식단과 건강관리법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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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이미지>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 에드 스테포드에게서 노하우를 습득한 후, 완벽히 자연인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삶보다 행복할까?



R7NFYRXAU3L7PGYEHIVM4RPTWY.jpg 마를린 주크 지음|김홍표 옮김|위즈덤하우스 <출처 : Yes 24>


'섹스, 다이어트, 그리고 아파트 원시인'의 저자이며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인 '마를린 주크'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통념으로 굳혀진 '원시적 삶'에 대한 환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원시 시대는 완벽한 시대가 아니라
춥고 불편하고 극복해야 할 시대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은 진화했다.
과거를 미화하는 실수이며, 착각이 낳은 환상이다.



수렵 채집인들이 최고의 환경 속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적응하며 아무런 걱정, 근심이 살았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이러한 사회적 트렌드를 만들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수렵 채집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고, 매 순간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버티며 살아야 했다. 어제까지 많았던 사과나무가 지난밤 몰아친 폭풍으로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을 발견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운 좋게 짐승의 떼가 그들 앞을 지나가고 모두들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을 모아 사냥을 시도해 보지만, 결과는 소뿔에 찔려, 말 뒷발에 맞아 소중한 가족, 친구가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인류의 역사는 매 시기마다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겼을 뿐, 절대로 스트레스가 없던 사회는 없었다.





수렵 채집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삶과 비교되어 행복하게 비치는 것은 어린 시절을 마냥 그리워하는 비논리적인 그리움과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살다 살다 이렇게 힘든 시절은 없었다고 말하며 내뱉는 푸념은 한층 무거워진 삶의 무게에 한숨을 보탠다.


지금 우리는 '힐링'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힐링은 덜어내는 일이다. 육체적이건 심리적이건 짐을 지우는 모든 것을 완전히 비워내는 것이 최고 경지의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면, 불행히도 그런 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그 길이 존재했던 시간도 없었고, 미래에도 그 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힐링은 적당히 덜어냄일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여행과 캠핑을 통해 원시인들의 삶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더 열심히 살아 보겠다는 눈물겨운 치료행위일지도 모른다.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인간 고유의 생체리듬을 자연에 맞추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원리에 맞추는 것이죠.
해가 뜨고 지는 3일 정도를 자연에서 보내면
불필요한 상념들이 사라지고 생각들이 단순해집니다.


도시 사회 시스템보다는 자연의 시스템이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자연 속에서 의식주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생존의 스트레스는 존재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아웃도어 뉴스 잡지 2017년 7월호 중에서
<출처 : 브런치 작가 Jae Yeong Jo에서 인용>






'맨 앤 와일드', '고독한 생존', '나는 자연인이다', '정글의 법칙'과 같은 프로그램들에게 쏟아지는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수능과 모의고사에서 수렵채집사회에 대해 계속 출제를 하고 있는 것, 바로 이것들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일은 결국 테스 형의 말대로 다시 우리 개인에게 돌아온다.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행복은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를 찾아가는 그 고귀한 사유와 성찰의 시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이유를 찾게 해 줄 것이고, 결국 행복으로 가는 관문을 열어줄 것이다.





가끔은 따뜻한 봄날, 아무도 없는 캠핑장 주변 숲 속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양지바른 곳에 편안히 누워, 인문학 고전의 아무 책을 읽다 잠들고 싶은 꿈을 꾼다. 바람과 나뭇잎과 새는 완벽한 화음의 삼중주로 자장가를 연주한다. 나비가 날아와 콧등에 겁없이 앉는다. 달콤한 낮잠을 방해한 죄로 나비를 수렵하고 이목구비에 뻔뻔함이 있는지 살펴본다. 먹지도 못할 것, 풀어 주기로 결심하고, 석방시킨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사과나무로 향한다. 제일 먹음직스러운 하나를 채집하여,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너무 시다. 시어도 너무 시다. 이것을 먹을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사과를 내뱉으며 텐트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꺼낸 뒤, 근처 맛집을 검색한다.

얼추 비슷비슷한 메뉴를 가진 식당들로 도배된 화면을 진지하게 바라보다, 한 곳을 선택한다.

맛집으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설렌다.


행복은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나 보다.


나는 호모 구글링쿠스, 검색 선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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