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 영 Apr 20. 2021

<영어 지문 속의 인문학> 혹시 '수'를 아시나요?

feat.  피타고라스 첫 번째 이야기, 뉴턴, 콘퍼드, 러셀

<피타고라스 첫 번째 이야기>

Newton himself acknowledged this flowing reality when he wrote, “If I have seen farther than others it is because I have stood on the shoulders of giants.”
[2019년 6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34번]

뉴턴은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거인은 어떤 분야에 큰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나 업적 그 자체를 가리키는 비유다. 평범한 사람은 거인의 존재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천재는 거인을 알아보고, 가르침을 얻는다. 그리고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거인보다 더 먼 세상을 바라보다, 결국 그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의 어깨를 내어줄 또 다른 거인이 된다. 뉴턴도 수학과 물리학의 거인이 된 천재 중에 하나였다. 뉴턴을 거인으로 만들어 준 그 거인의 거인의 거인의 거인은 누가 뭐래도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 기원전 570~495 <출처 : 구글 이미지>


피타고라스가 거인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고대 그리스 인물들이 늘 그렇듯, 확실치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확실치 않다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확실치 않지만 많은 이야기가 2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은 피타고라스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 '썰'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피타고라스는 밀레토스만큼이나 상업으로 흥했던 사모아 섬 출신이다. 밀레토스에서 살았던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도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인생이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는 여유로운 삶 덕택에 자칫 따분해 지기 쉬운 시간들을 올곧이 학문과 예술에 쏟아부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인생이다. 고대 그리스만 보자면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또 한 가지는 배가 불러 별 짓 뻘 짓 다하다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고 더 배가 불러 생을 마감하는 경우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를 증명해 주는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 그런 인물은 너무 많아서 그만큼 딱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과 기하학 분야에 이룩한 큰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그 덕택에 별 짓과 뻘 짓도 함께 남았다.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현명하지 않았을 때나 현명했을 때나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다 간 한 인물이 완벽하기만 했다면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가 덜하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를 알아보는 일은 흥미를 더한다.


<출처 : 위키 백과>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1970) :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다. 1950년 <서양 철학사>등의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피타고라스가 므네사르코스라는 재산가의 아들이었다는 설도 있고, 아폴로 신의 아들이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신의 아들이었구나, 어쩐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피타고라스의 행보를 근거로 판단해 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도 꽤 많았을 것 같다. 피타고라스는 훗날 이탈리아 남부 크로톤으로 이주했다. 크로톤 또한 밀레토스나 사모스처럼 부유한 도시였다. 피타고라스는 그곳에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설립해 함께 살았다. 누구는 이들을 '피타고라스 학파'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구는 이들을 '사이비 피타고라스 교단'이라고도 부른다. 사이비(似而非)는 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어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는 종교의 겉모습을 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종교를 의미한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당시에 존재했던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신선하면서 기이한 색깔을 보여준 것은 맞지만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피타고라스 학파는 당시 크로톤의 현실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리케이온과는 다른, 종교적 성향이 짙은 학술 단체였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피타고라스가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다는 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를 좀 더 재미있고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만든 짓궂은 수식어 중에 하나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낫겠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피타고라스를 신비로운 존재로 여겼다. 피타고라스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했는지 아니면 신도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교주를 그렇게 '브랜딩'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종교의 탄생과정에서 보이는 공통된 패턴을 고려해보면 피타고라스가 자신을 스스로 신격화시켰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타당하다. (지금 관점에서 이런 면을 보면 사이비스럽긴 하다.)

<출처 : 구글 이미지>
프랜시스 맥도널드 콘퍼드(Francis Macdonald Cornford, 1874~1943) : 영국의 고전학자. 고대 그리스 종교에 관한 고대 철학의 주요 저서들을 번역했다.


콘퍼드는 피타고라스가 '지성적 신비주의'(intellectual mysticism)를 따랐다고 말한다.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피타고라스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되, 무비판적으로 맹신한 것이 아닌 이성을 통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자신이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점점 더 사이비 같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의 한쪽 허벅지는 황금으로 되어 있었단다. 신체의 '절반'이 황금이라고 주장하면 반신반금(半神半金)이어서 한쪽 허벅지만 금이라고 주장했을 거라 생각하며 피식 웃어본다. 피타고라스가 강을 건너면, 피타고라스가 강이 되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고 이내 강이 그를 향해 경배를 올렸단다. 단지 강에서 수영을 즐기던 모습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뛰어넘어 자연이 그를 숭배하게 했다는 점은 장자도 깜짝 놀랄만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피타고라스는 영혼은 불멸하며 존재하는 무엇이든 일정한 주기로 순환하는 변화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 인도의 윤회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어느 쪽이라고 명확하게 단정 지을 순 없다. 피타고라스가 하늘에서 '내가 스스로 생각해 낸 거야.'라고 해도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없으니까. 어쨌든 모든 생명체는 다 가족이라고 믿은 피타고라스는 틈만 나면 동물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며 가족모임을 했단다.


일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에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한 동물의 슬픈 이야기가 있다. 피타고라스가 산책을 하다 독사를 만났다. 피타고라스는 가족일지도 모를 그 독사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하게 독사를 물어 죽였단다. 때려죽인 것도 아니고 밟아 죽인 것도 아니다. 물어 죽였다. 보통 독사가 사람을 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제로 당했을 독사를 생각해 본다. 자연과 하나라면서, 다 같은 가족이라면서, 나는 왜 죽이냐며 따졌을 독사를 생각하니 내가 물린 것처럼 아리다.


자, 다시 동물과 함께 하는 가족모임으로 돌아와 보자. (독사는 없다.) 피타고라스 설교에 졸기라도 하는 날에는 바로 사달이 난다. 물려 죽기 싫어 피타고라스의 설교를 열심히 귀담아듣고 있었을 동물들을 생각하면 애잔함이 몰려온다. 독사가 왜 가족에서 제외됐는지 이제 그만 생각해야겠다. 전생에 그의 부모를 죽인 철천지 원수가 독사로 환생하여 나타나, 이번 생에서는 도저히 너를 용서할 수 없으니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며 물어 죽인, 반인(半人)간적인 피타고라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며 헤아리면 될 듯싶다.





피타고라스는 교단의 계율도 만들었고, 제자들과 함께 이를 엄격하게 준수했다.


1. 콩을 먹지 마라.
2. 떨어뜨린 물건을 줍지 마라.
3. 흰 수탉을 건드리지 마라.
4. 빵을 쪼개어 나누지 마라.
5. 가로대를 넘지 마라.
6. 쇠붙이로 불을 휘젓지 마라.
7. 한 덩어리 빵을 전부 다 먹지 마라.
8. 꽃 장식을 잡아 뜯지 마라.
9. 액체 측정기 위에 앉지 마라.
10. 심장을 먹지 마라.
11. 큰길로 다니지 마라.
12. 제비가 지붕을 나눠 쓰게 하지 마라.
13. 냄비를 불에서 꺼냈을 때 자국을 재에 남기지 말고 휘저어 없애라.
14. 불빛 옆에서 거울을 보지 말라.
15.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침구를 말아서 몸이 있었던 흔적을 없애라.


십계명으로는 부족해 십오계명을 만들었다. 이것 봐, 완전 사이비잖아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도는 돼야 어디 가서 종교라고 명함을 내밀  있다.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계율들이 그리스 신화로부터 비롯된 금기 시항에 속하며 피타고라스가 그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라 말한다. 오늘날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재미난 상상력이 발동된다. 다른  몰라도 콩을 먹지 말라라는 계율은 콩을 싫어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인용하며 영양사님과 부모님께 개길까  벌써부터 겁난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남녀 모두 같은 규정에 따라 동등하게 가입할 수 있었고, 가입비는 가진 재산 모두였으며, 그렇게 모여진 재산은 공동으로 소유했다. 남녀의 경계를 뛰어넘어 다 같은 인간으로서 진정한 평등을 이룩한 이상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모습을 구현한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고, 노예들이 모든 필요한 노동을 다해주었다. 피타고라스 교단의 구성원은 피타고라스와 신도들, 그리고 수많은 노예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피타고라스 교단을 진정한 평등을 이룬 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피타고라스 교단은 과학이나 수학분야에서 발견한 모든 사실조차도 공동체의 자산이라 여겼으며 발견한 사실은 모두 피타고라스의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기가 막힌 기획안을 작성해서 부장에게 제출했더니, 그 기획안에 자신의 이름은 쏙 빠지고 부장 이름만 적혀 있는 모양새다. 이것이 피타고라스를 향한 투철한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신도들의 신실한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피타고라스는 천문학, 수학, 기하학을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교주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타고라스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피타고라스가 너그러운 성품을 가진 교주였다면 좋았을 것을. 피타고라스의 사전에 관용이란 없었다. 피타고라스가 정의롭지 못한 독재를 행사했다 할지라도 이는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고, 문제로 삼을 수도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계명을 철저히 지킬 것을 서약하게 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교단에서 곧바로 퇴출시켰다. 또한 피타고라스 교단이 연구한 모든 자료와 결과는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고, 이를 어긴 자 역시 엄벌에 다스렸다. '루트 2 살인사건'은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무시무시한 독재와 아집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근거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 지문 속의 인문학>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