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피타고라스 두 번째 이야기, 히파소스
루트 2 살인사건은 무엇일까? 두 사람을 루트(root), 즉 뿌리로 때려죽인 것일까? 두 사람을 죽인 후에 나무 루트 밑에 묻어 버린 사건일까? 아니면 한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2의 제곱근 값을 구하라는 벌을 내려 남은 생을 계산만 하다 지쳐 죽게 만든 사건일까? (2의 제곱근 값은 순환되지 않은 무한소수다. 65자리까지의 근삿값은 다음과 같다. 1.41421 35623 73095 04880 16887 24209 69807 85696 71875 37694 80731 76679 73799...) 어쨌든 살인사건이다. 그렇다면 누가 죽였고, 누가 죽었으며, 왜 죽였을까? 살인범은 피타고라스의 신도들이었고, 살인 교사자는 피타고라스다. 죽은 사람은 그의 제자, 히파소스였다. (피타고라스는 제자와 신도들을 구분하여 대했다.) 이제 궁금증은 하나만 남았다. 왜 죽였을까?
살인 교사자 피타고라스는 수비학의 신봉자였다.
수비학(數秘學:Numerology) : 수를 중심으로 한 신비에 관한 학문. 수에 의미를 부여하며, 수의 나열 등으로 신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4와 13을 쓰기 싫어하고, 행운의 숫자 7을 좋아하는 당신, 좋아하는 사람과 이름점을 보며 궁합을 맞춰보는 당신! 당신은 수비학 덕후!
학자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가 스승 탈레스의 권유로 이집트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수비학을 접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수비학은 인도에서 시작됐다. 고대 인도 힌두 사상에 근간을 둔 수비학은 수의 개념을 나타내는 기호, 즉 숫자를 만들었다. 오늘날 전 세계 약속 언어인 아라비아 숫자는 사실 인도 수비학에서 비롯됐다.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출신의 수학자, 알 콰이즈미가 이를 정리하고 발표하여 아라비아 숫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일은 흥미롭다. (아메리카가 콜럼비아가 아닌 것처럼) 인도의 수비학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로 전해 졌고, 왕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성행하면서 수비학의 신비로움은 종교와 비슷하게 자리 잡았다. (생년월일을 통해 인생을 점쳐보는 우리의 '사주'처럼)
Al-Khwarizmi was a mathematician, astronomer, and geographer....... The translated text helped introduce to Europeans a radical new way to count and do math―using what are now called Arabic numerals: 1, 2, 3, 4, 5, 6, 7, 8, 9, and 0.
[2013년 11월 고1 전국 연합 모의고사 34번]
알 콰리즈미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지리학자였다....... 그의 번역된 책을 통해 유럽인들은 아라비아 숫자라고 불리는 1,2,3,4,5,6,7,8,9,0을 사용하여 셈을 하고 수학 계산을 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수비학의 신비로움에 영향을 받은 피타고라스는 1부터 10까지의 정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고, 이를 이용하여 신도를 모집하는데 활용했다.
0. 시작
1. 모든 것의 기원, 완성
2. 분열과 대립
3. 최초의 수이자 가장 오래된 수
4. 정의와 질서
5. 남성과 여성의 결혼
6. 건강과 균형, 사랑
7. 자연의 질서
8. 안정과 조화
9. 수평선, 종착역
10. 완성과 시작
5가 안돼서 고민이야? 너의 얼굴이 7과 8을 이루지 못해서야. 한마디로 너의 인생은 지금 2 속에 있어. 너에겐 지금 1이 필요해. 1은 모든 것의 기원, 바로 피타고라스 님이란다.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련? 우리와 함께 하면 5도 이루고, 10도 된단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신앙을 모두 너에게 줄게. 네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큰 영)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피타고라스 님은 널 6해!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자는 그렇게 하나둘 늘어났다. 어느 날 피타고라스는 중대발표를 하겠다며, 동물이건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광장에 모이게 했다. 광장에 마련된 강단처럼 보이는 바위에 올라간 피타고라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하얀 옷은 신비로웠고 들고 있던 지팡이는 1을 상징하는 듯 거룩했다. 피타고라스는 지팡이를 땅에 힘껏 찍으며 '만물은 수'라고 외쳤다. 그 순간 '리라'의 아름다운 선율이 사람들의 귀를 감쌌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리라의 화음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피타고라스는 리라의 음악을 BGM으로 삼으며 말을 이어갔다. 피타고라스는 리라 현의 전체 길이를 간단한 정수의 비를 갖는 두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두 눈을 감고 천국에 온 듯한 황홀감을 느끼며 피타고라스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피타고라스는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 속에 이처럼 오묘하면서도 정확한 질서가 있으며, 그 질서는 수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곧 수라고 피타고라스가 힘주어 말했을 때 리라의 연주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신도들은 숨겨왔던 세상의 진실이 드디어 공개되었다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동물들도 같이 울부짖었다. 피타고라스는 다시 한번 힘차게 지팡이를 들었다 땅에 내리꽂으며 말했다. '침묵은 금이다. 이 사실을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라!'
신도들은 자신의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서로를 바라보고 입단속을 단단히 하자 결의했다. 돼지꿈을 꾼 뒤, 꿈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위대한 신의 계시를 누설하면 영험함이 곧 사그라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느꼈던 불안감은 곧 강력한 유대감으로 바뀌었다.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 비밀을 공유하며 서로 친해져 수만 년을 살아남은 사피엔스! 그들도 사피엔스였다.
피타고라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바위에서 내려와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인파를 가르며 뚜벅뚜벅 걷다가 이내 사람들 한 중간에 멈춰 섰다. 피타고라스는 지팡이를 붓처럼 잡고, 걸리적거리는 닭 몇 마리를 막대기로 쳐내더니 이내 땅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지팡이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눈치 없는 비둘기 여러 마리만이 땅에 있는 모이를 쪼으며 '구구구' 거리고 있었다. 다 그린 후 피타고라스는 다시 한번 지팡이를 힘껏 땅에 내리쳤다. 눈치 없이 아직도 피타고라스 근처에 얼쩡거리던 닭은 깜짝 놀라 꼬꼬댁하며 도망갔고, 눈치 없던 비둘기 여러 마리는 피타고라스한테 맞기 싫어 하늘로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비둘기에게 시선을 뺏기자, 머쓱해진 피타고라스는 헛기침을 크게 하며 다시 한번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외쳤다. '직각 삼각형 빗변의 제곱이 두 직각 변 제곱의 합과 같다!'
우렁찬 그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또다시 열광하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몇몇은 웃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복화술을 써서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응원하는 팀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쳤을 때, 야구 룰을 하나도 모르는 여자 친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함께 발광하며 날뛰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룰이 뭐가 중요하고, 직각 삼각형이 뭐가 중요할까. 그냥 좋은 거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흡사 광신도 집단의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하며 계속 그의 이름을 외쳐댔고, 몇몇은 피타고라스의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키스를 해댔다. 피타고라스는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광장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제자들 몇 명이 피타고라스가 남긴 직각삼각형 그림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오직 계산만으로도 도형이 성립하는지, 성립할 수 없는지를 이제 알 수 있게 되었다며 크게 기뻐했다.
"이상한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표현은 이걸 두고 말하는 거다. 야구장에 같이 갔던 여자 친구가 갑자기 정색하며 '근데 오빠 어젯밤에 뭐했는데 전화 안 받았어?'라고 물어볼 때랑 다를 바 없다. 행복은 그리 길게 가지 못한다. 나 때문이건, 타인 때문이건.
이상하다고 말한 이는 똑똑한 '히파소스'였다. 히파소스는 피타고라스도 인정한 최고의 수재였다. 요전 날 대장간에서 대장장이가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화음을 이루는 법칙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피타고라스에게 말했을 때,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의 예리함을 칭찬하며 함께 연구해 보자고 제안할 정도였다. 피타고라스와 히파소스를 주축으로 한 제자들은 결국 특정 비율을 가진 진동이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를 악기 '리라'에 적용시켜 완벽한 화음을 완성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히파소스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삼각형을 바라봤다. 이 법칙은 이미 이집트인 사이에 널리 알려진 생활의 지혜였다.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조금만 일해봤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 이 법칙을 피타고라스가 다시 언급한 것에 히파소스는 의아해졌지만, 사실 진짜 궁금한 점은 다른데 있었다. 히파소스는 두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삼각형의 빗변 길이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 맞는 수가 없었다. 피타고라스가 말한 수, 지금까지 굳건히 믿고 있었던 세상의 법칙을 나타내는 수는 자연수(유리수)였다. 히파소스는 제곱해서 2에 가까워지는 수를 찾으려 했다. 1.41421 35623... 며칠 밤을 새워도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히파소스는 드디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수만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즉 무리수가 존재한다는 깨달음이었다.
히파소스는 '유레카'를 외치며 피타고라스에게 달려갔다. 그때 히파소스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서 절대로 두지 말았어야 할 최고의 '무리수'였다는 것을.
유레카 : 고대 그리스 낱말 εὕρηκα heúrēka에서 유래한다. "유레카"의 의미는 "나는 (그것)을 찾았다" 다. 아르키데메스가 목욕탕에서 깨달음을 얻고 한 말로 널리 알려졌다.
피타고라스는 미소를 잃지 않고, 히파소스의 말을 경청했다. 히파소스의 말은 한치의 틀림이 없었다. 히파소스에게 위대한 발견을 했다며 칭찬을 해준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에게 고생했을 테니 푹 쉬고, 내일 큰 상을 내리는 행사를 거행하겠노라 약속하며 히파소스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히파소스가 돌아간 뒤, 피타고라스는 수치심과 노여움으로 온몸을 떨었다.
우주는 수로 표현되는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그런데 수로 표현될 수 없는 게 존재하다니. 나는 왜 이것을 몰랐을까? '만물은 수'라고 이미 말했는데, 수로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다시 선언해야 하나? 그날 선보였던 나의 퍼포먼스가 하루아침에 웃음거리가 될 터. 안된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날에는 나뿐만 아니라, 이 학파, 이 교단의 운명이 위태로워 질지도 모른다.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를 다시 불러들여 입단속을 시키고자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히파소스는 숙소에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도들과 함께 히파소스를 찾아 마을로 나섰다. 얼마 되지 않아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무리수의 발견에 대해 떠벌리고 있는 설마가 사람 잡는 장면을 목격했다.
피타고라스 님이 날 인정했어.
난 최고의 제자야.
난 후계자가 될 거야.
피타고라스는 결심이 굳었다. 피타고라스는 함께 나선 사람들에게 나지막이 읊조렸다. 히파소스는 나에게 6이었는데, 이제는 9가 되었군. 히파소스에게 10을 선물해야겠어. 신도들은 피타고라스가 말한 숫자의 의미를 헤아릴 필요조차 없었다. 피타고라스의 표정이 요전에 독사를 만났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신도들은 피타고라스 님이 급하게 널 찾으신다 하며 히파소스를 바다 근처 절벽으로 유인했고, 그곳에서 히파소스를 바다에 빠뜨려 물고기 밥의 소스로 만들었다.
히파소스는 무리수의 최초 발견자로 피타고라스에게 무리수를 말한 무리수를 두어 무리수를 인정하지 않은 피타고라스의 무리수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피타고라스가 절대로 그랬을 리 없다.
피타고라스는 콩을 싫어했다. 십오계명에 1번도 '콩을 먹지 말라'였다. 일부 학자들은 피타고라스가 콩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어찌어찌해서 피타고라스가 머물던 집에 불이 났는데,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콩밭을 가로질러 탈출해야 했단다. 피타고라스는 그 사실을 알고, 콩밭은 죽어도 가기 싫으니, 나를 놔두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피타고라스는 불에 타 죽어 콩밭에 가지 않았다.
피타고라스의 신념은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무섭고 강했다.